/황석현(전기안전공사)

소파에 누워 SNS에 올라온 글을 훑다가 한 게시물에 시선이 멈추었다. 폰트 회사에서 올린 이벤트 게시물이었다. 폰트 공모전에 당선되면 무료로 폰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참가비도 없었고, 공모전에 당선이 되면 제작비용도 들지 않았다.

폰트는 문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글자체이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가장 먼저 글자체를 정하는데 나는 바탕체와 명조체를 많이 쓴다. 다른 폰트도 써볼 법 하지만 직장에서 바탕체와 명조체를 많이 쓰다 보니 그냥 계속 사용하게 된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다양한 폰트를 이용했다. 예쁜 폰트를 찾아서 과제물이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감성이 메마른 직장인이 되고 난 뒤에는 폰트에 관심이 없어졌다. 처음 입사할 때 틀에 박힌 폰트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어서인지 아무 감각이 없다.

공모전에 관심을 가지고 포털 사이트에서 폰트를 검색해 보았다. 디자인이 가미된 개성 있는 다양한 폰트들이 많았다. 기업에서 마케팅의 목적으로 만든 폰트가 많았지만 개인이 만든 예쁜 폰트도 있었다. 

나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 그런데, 폰트는 글씨를 쓰는 것과는 다른 영역이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내친 김에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었다. 잠시 내 글씨로 도전해보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글씨도 누군가에게 개성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하얀 종이와 붓펜을 준비했다. 일필휘지의 마음으로 순백의 바탕에 획을 그어 나갔다. 남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명인 못지않게 비장했다. 붓펜을 휘감아 하얀 종이위에 끝을 댄다. 손의 떨림이 붓 끝에 전달되지 않도록 잔뜩 힘을 주었다. 혹시 엇나갈까 봐 숨을 참으며 한 획씩 그어 나갔다. 획수가 늘어날 때마다 이마의 땀방울이 맺혔다.

글자도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시대이다. 글자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캘리그래피라는 장르도 대중화되었다.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에 턱걸이라도 하려면 글씨에 개성을 줘야 했다.

쓰고자 하던 글자에 변형을 가해 보았다. 자음의 크기를 모음만큼 늘려 보면서, 글자에 균형감을 더해 단어를 완성했다. 평상시 쓰던 글자와 모양이 다소 달랐지만 개성은 뚜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

만든 글자를 스캔하고 지저분한 끝부분을 다듬어서 공모전에 제출할 준비를 했다. 글자체 이름이 고민되었다. 행여 공모전에 당선된다면 지금 정한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이름 중에서 하나가 뇌리에 스쳤다. ‘완주주민체’였다. 완주는 주민이 주도하는 문화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고, 어쩌면 이 또한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완주의 서체도 주민이 완성해간다는 의미로 ‘완주주민체’라 이름 붙였다.

의미가 좋아서였을까 운 좋게 응모작이 당선되고 무료 폰트가 제작되어 출시되었다. 내가 만든 폰트가 ‘완주주민체’라는 이름을 달고 인터넷 세상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이 사용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유용한 폰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삼례문화예술촌 유튜브 채널에서 ‘완주주민체’를 콘텐츠 제작에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완주주민체’가 전국 어디서든 주민이 주체가 되는 모든 장소에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이를 계기로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풀뿌리 문화가 활성화되어서 다른 이웃들이 만든 제2, 제3의 주민체도 생겨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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