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국가관광거점도시 선정을 기념하는 본격적 인문학 서적이 출판됐다.

이종근 작가의 <전주인문기행 1~2권>(신아출판사)은 전통문화예술의 도시 전주의 음식, 예술, 기록, 인물, 역사와 생활, 문화유산들을 정리했다.

특히 민속은 물론 풍수, 지리, 역사, 문학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전주를 바라본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근대사 이야기로는 다가산 비석군을 들 수 있다.

지난해 전라감영 동편 부지가 복원됐다. 감영 안의 여러 건물이 들어섰고 선화당 옆 관풍각도 복원된 건물 가운데 하나다. 관풍각 옆에는 이십여개의 비석이 서있다. 전라도 관찰사를 비롯한 여러 관리들을 기리는 비다.

원래 이 비석이 서있던 자리는 이 자리가 아니라고 한다. 전라감영이 헐리기 전 감영 출입문이었던 포정루와 연관이 있다. 1909년 기록을 보면 2층 누각으로 된 팔달문이 있었으며 그 앞에 32개의 선정비가 있었다고 한다.

1954년 4월 당시 안진길 전주시장 때 제대로 관리가 안돼 전주 시내 곳곳 넘어지고 방치된 비석을 다가산 밑 제방 위로 옮기고 정돈식을 가져 최근까지 화장실 옆 비석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비석들은 전라감영 복원 이후 관풍각 옆으로 이전됐다.

이 비들과 달리 1986년에 세워진 김인전 목사 기념비와 배은희 목사 기념비는 서문교회 종탑 옆으로 이전했다.

이 때문에 수십년간 사람들과 친숙해졌던 다가산 비석군은 달랑 3개만 남아 그 흔적을 기념하고 있다.

전주 특산품인 복숭아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전주복숭아는 승도(僧桃)로 유명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전주의 ‘승도’가 첫 번째라고 했다. ‘승도’는 털이 없어 스님의 머리처럼 껍질이 반질반질한 복숭아를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의 천도와 같이 과피에 털이 없는 계통을 일컫는 것으로 신두복숭아로 불리워지며 전주가 명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앞서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전주 부근은 모두 승도가 난다. 크고달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주 복숭아는 1910년대 일본인들이 현 완산구청 일대에서 처음 재배를 시작했다. 1960년대 백도 등 신품종이 보급된 이후 급속히 확산돼 1970년대에는 재배 면적이 600ha를 넘어서며 국내 최대 복숭아 집산지로 자리했다.

전주 송천동의 오송(五松) 유래도 밝혔다.

오송리라는 지명은 큰 소나무 다섯 그루가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전주 삼천동 대명의사 남이창 묘비 지은이는 유학자 이도형으로 병자호란 때 전주로 내려 왔다. 건지산 아래에 손수 소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집 이름을 오송재((五松齋)라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오송으로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 명칭이 남아 있다.

이밖에 전주 한옥마를 현판이 소년 명필의 경연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신석정 시인의 예술혼이 엿보이는 ‘다가산방’ 편액을 찾아 이 글씨를 효산 이광열의 예서체 작품임을 확인했다.

작가는 “자료를 찾고 한문공부를 하는 등 책을 내는데 30여년이 걸렸다”면서 “책 내용 중 대부분은 연구하고 답사하면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고 말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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