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예전에는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뀔 때면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매화꽃이 핀 이후 목련, 개나리, 벚꽃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꽃을 활짝 피워 2-3개월가량 꽃구경을 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지구온난화로 꽃의 개화시기가 거의 같아져 봄에 피는 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핀 후 1-2개월 뒤 바로 진다. 그리고 여름으로 훌쩍 넘어간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 봄바람은 사람들에게 묵은 것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희망, 기대감과 설레임을 갖게 만든다. 봄바람은 따스하고 온화하지만 가끔 심술을 부리면 꽃샘추위의 위력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이에 반해 가을은 만물이 결실을 맺고 마무리를 짓는 시기라 매우 분주하다. 사람들이 부지런하지 못하여 가을 서리라도 내리면 논밭에서 거두어들이지 않은 작물들은 치명타를 입는다.

‘된서리’는 늦가을에 아주 많이 내린 서리를 말한다. 우리가 가끔 쓰는 말 중에는 ‘된서리를 맞았다’는 표현이 있다. 이 된서리가 아직 거두어들이지 않은 작물에 타격을 준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 문인 홍자성의 어록을 모은 채근담(菜根譚)에는 봄바람이나 가을 서리에 빗대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표현한 사자성어가 나온다. 채근담(菜根譚)의 채근(菜根)은 송나라 학자 왕신민이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채근담은 동양 최고의 처세서인데, 여기에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이 말은 “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春風)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너그럽게 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 서릿발(秋霜)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줄여서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고 한다.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하게 하라는 ‘관인엄기(寬人嚴己)’와 같은 뜻이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은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지만, 특히 공직자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을 항상 마음속에 되새기며 공직생활을 하여야 한다. 공직자의 마음가짐인 청렴(淸廉)은 저명인사의 특강이나 상급자의 교육 그리고 액자 속 글씨에서 나오지 않는다.

청렴은 “자신과 주변을 맑게 살핀다”는 뜻이다. 청렴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덕목으로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속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청렴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먼저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있고 바른 태도로 행동을 하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약속,  원칙과 규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서로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청렴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 그리고 원칙과 규칙을 통해 싹이 튼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 청렴이 성장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청렴한 삶을 사는 것은 녹록치 않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 완벽한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의 반대되는 말은 “지기춘풍(持己春風) 타인추상(待人秋霜)”이다. “자기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을 서릿발(秋霜)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변명과 남 탓을 하며 쉽게 넘어가지만, 다른 사람의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는 냉혹할 정도로 비판하는 속성이 있다. 사람들은 역지사지를 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흔히 자신에게는 관대한 기준을, 타인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세우곤 한다.

이에 대해서 명심보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꾸짖는 마음은 명확하다. 비록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 있어서는 어둡고 혼미하다. 남을 꾸짖는 그 명확한 마음으로 나를 꾸짖어라. 나를 용서하는 그 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그러면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됨이 명확할 것이다.”라는 명구가 나온다.

리더십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맥스웰도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판단할 때와 남을 판단할 때, 완전히 다른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 남을 판단할 때는 그의 ‘행동’을 기준으로 삼으며, 그 기준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에 자신을 판단할 때는 ‘의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가 잘못을 범하더라도 우리 의도가 훌륭했다면 쉽게 용서한다. 따라서 우리는 변화를 요구받을 때까지 실수와 용서를 반복한다”고 설파한다.

우리가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자기춘풍·타인추상(持己春風·他人秋霜)의 삶을 살 것인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후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는 혼탁해지고 언젠가는 불행해진다. 이에 반해 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깨끗해지고 약속과 원칙, 규칙이 바로서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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