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강살리기 익산네트워크

새벽좌선을 마친 우리집 려문제 마당은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서편에 지는 흐린 달빛에 매화향이 가득합니다. 이른 봄 찬 공기는 앞섬을 여미게 하지만 바람이 곤히 잠든 새벽은 봄꽃 향기 천국입니다. 마당에도 마치 별들이 새벽안개로 내려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만금의 변화를 둘러보기로 마음 먹고 옅은 안개를 헤치고 심포항을 거쳐 순환도로를 달려 돌아 계화도 1방조제 밖의 양지항에 내렸습니다.

항구 건너 바위에 우뚝 서있는 큰 비석에는 “砥柱中流百世淸風”라 새겨져 있습니다. 청풍대비는 2008년 봄에 간제 전우선생을 추모하는 화양회에서 세운 7.5m 대비로 구비와 함께 당당합니다. 전면의 여덟 글자 중 ‘지주중류’는 중국 황하강 중류에 있는 기둥처럼 생긴 돌산(지주)을 표현한 것인데 흔들리지 않는 기품을 상징하고, ‘백세청풍’은 은나라가 망하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서 온 성어로 이 역시 ‘영원히 맑은 바람’처럼 변하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나타내는 한 말 슬픈 역사를 버텨낸 간재선생의 곧은 성품과 선비정신을 표현한 것 이라 생각합니다.

양지항에서 만난 어부는 “요사이 재첩 수확이 한창이였고 배수문 추가개방 이후 물이 부쩍 맑아지니 시야가 좋아 수월하다” 하였습니다. 25차 새만금 위원회 이후 담수나 해수유통이 딱히 결정된 것이 없고 2년후에 다시 판단하는 내용은 아쉬움이 많지만 어부의 말씀에 희망이 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문득문득 인연들 에게서 새만금 30여년 까맣게 잊은 이야기들이 나올 때는 부끄럽기만 합니다.

8년전 이였습니다. 마음으로 모시던 법타원 스승님을 뵈옵던 날 법문 가운데 새만금 이야기가 나오자 “만경김제평야가 풍요를 상징하듯 미래의 萬金이라 하셨으니 소중히 지키고 후세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김교무~ 불끄듯이 공부해야 한다” 시며 독려하시고 얼마지 않아 열반길을 제촉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안부를 묻던 눈빛 인사와 깨달음을 주시던 고마운 마음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후로 습관이 되어버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음으로 誓願하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눈을 뜨며 맞이하는 모든 대상들에게 부처로 대하며 인사합니다.

‘반가워요! 좋은 아침!’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이 하느님으로 부처님으로 보일 때 나는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사람이지요.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이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날마다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살고 어제의 생각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온전히 살고 싶었습니다. 그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행과 불행을 만든다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나의 생의 마지막까지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은 경구를 큰소리로 외워 읽는 것입니다. “一圓(진리)의 위력을 얻도록 까지 서원하고 一圓(진리)의 체성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함!”입니다.

순간순간 깨달음을 이루는 부처가 되도록 약속하고 결국은 내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새만금부처의 위력과 이곳에서 우리가 온전한 몸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시대를 위해 우리의 역할이 과연 무었인지 더욱 깊은 고민이 되는 봄날의 계화도입니다. 새만금이 오래된 역사 안에서 온전하게 시대의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른 들판을 돌아 려문제에 들어오니 저녁 8시가 지났습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빛은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스크의 답답함 속에서 오히려 더욱 惺惺 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풍요를 누리고 사는지 모릅니다. 밝은 처마 등불에 별빛이 가려졌습니다. 할 일도 많고 상관 할 일도 많습니다. 30여년 새만금의 이야기를 내려놓으니 선명하게 보입니다. 스승님께서 염원하시던 더 깊어지는 공부가 아름다운 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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