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근 국립전주박물관장이 지난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전주와 별 인연이 없었지만 이제는 ‘조선 선비문화’ 특성화 박물관을 이끄는 위치가 됐다. 전주에 오기 전 국립대구박물관장과 국립춘천박물관장을 잇달아 거친 홍 관장에게 국립전주박물관의 비전을 들어 봤다.

홍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는 동안 전주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박물관 근무는 물론이고 가까운 지인도 없다. 굳이 들자면 가족들과 함께 전주한옥마을에 관광 왔던 기억 정도,

“나에게 전주라는 도시는 낯설다. 직장이나 개인적 인연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오히려 설렘이 인다. 이제까지 만난 분 대부분이 포근한 인상으로 오래전부터 같이 생활하던 이웃 같은 느낌이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실 것으로 믿는다.”

전주박물관장 자리는 전임 천진기 관장이 경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7개월 간 공석이었다. 그동안 관장 인사가 지연되면서 박물관 운영에 대한 걱정도 제기됐었다. 홍 관장은 학예실장 등 박물관 직원들이 관장 공백에도 불구하고 올해 사업을 알차게 준비해 도민들에게 좋은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관장이 부재중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학예실장 등 전 직원이 모든 업무를 잘 진행해 왔다. 올해 전시 중심은 우리 박물관의 브랜드인 ‘조선 선비문화’와 ‘지역의 역사’다. 우리나라 근현대 서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전북의 서화를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지난해 복원된 전라감영과 올해로 (발굴조사 완료) 20년을 맞는 용담(댐)도 관련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전주박물관은 최근 몇 년간 조선 선비문화에 관한 다양한 전시를 선보였다. 대표적인 전시로 ▲서원,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기르다(2020년 6월~8월) ▲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 석정 이정직(2019년 9월~11월)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전하다(2019년 4월~6월) ▲무성서원에서 선비정신을 묻다(2018년 9월)등이 있다. 이들 전시는 조선 선비문화의 중심인 전북의 특성을 잘 반영한 전시로 많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홍 관장은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수많은 박물관 가운데 전주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로 ‘서화’를 꼽는다.

“전주박물관의 정체성을 ‘선비’에 두고 있지만 그 세계의 폭은 너무 넓다. 그래서 지금 우리 박물관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서화라고 생각했다. 근현대 우리나라 서화 역사에서 전북의 서화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 채용신, 석정 이정직, 석전 황욱, 강암 송성용 등 다 꼽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분들이 훌륭한 서화를 많이 남겼다. 또 박물관에는 유족에게 기증받은 선생의 작품을 포함해 많은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이런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이 전주박물관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지난해 10월 동편 복원을 마친 전라감영의 역사를 되짚고 의미를 살피는 특별전 일정은 코로나 19 여파로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6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지만 코로나 19 상황이 호전된다면 5월 개막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조사를 마친 진안 용담 특별전도 에정돼 있다.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에 대한 조사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4차례 이루어졌다. 지난 2003년 특별전 ‘수몰된 옛사람의 흔적-龍潭’을 가졌다. 당시 전시에는 전북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인 진그늘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과 신석기, 청동기시대 유물 그리고 삼국시대 황산고분과 와정토성에서 출토된 토기를 통해 백제와 대가야가 대치하는 상황을 보여줬다. 올해는 전시 이후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포함해 전체적인 유물 가치를 공개할 예정이다.

홍 관장은 지난 2018년 국립대구박물관장으로 재임했었다. 복식과 섬유를 중심으로 한 대구박물관의 특성을 살리는 한편 누구나 편하게 접근하는 박물관 환경을 만드는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대구박물관에 입점 시킨 카페는 ‘대박’을 치며 방문객 증가에 한몫을 했다.

“옛날 박물관은 어쩌다 가는 소풍 장소였다. 많이 방문하지 않는 곳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방문객 트렌드가 변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방문객이 가장 많은 요일은 수, 목, 금이었다. 주말은 없고. 방문객 대부분이 단체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토요일과 일요일 방문객이 가장 많다. 박물관이 주말 가족이 함께 하는, 휴일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찾는 공간이 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박물관은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굳이 전시를 보지 않더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돼야 한다. 놀면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느끼는 공간, ‘역사공원화’가 우리 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래서 친근한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일부 땅을 확보하고 현 정문과 주자장 등의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수렴중이다.”

전북 동부지역은 최근 몇 년간 ‘전북가야’로 도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가야사 연구에서 전북가야는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홍 관장은 조심 스럽다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관건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가야대전’을 준비한 적 있다. 전북에 가야의 세력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남원 지역을 비롯해서 장수, 진안 등 전북 동부지역에 대가야의 외곽 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북 지역 가야에 대한 조사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은 예산투입으로 집중적인 조사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 박물관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 조사 연구 성과를 전시기획을 통해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해 마련한 ‘견훤전’도 이런 의미로 기획한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의 오래된 숙제 가운데 하나는 협소한 부지를 확대하는 일이다. 이는 박물관 입구도 도로에서 잘 보이지 않는 문제와 함께 항상 골칫덩이였다. 다행히 올해 박물관 입구 땅을 확보 할 수 있는 국가예산이 배정됐다. 더불어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전주시 소유 전주역사박물관과의 관계 설정도 주목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주역박이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이 빈약한 지역으로 이전하고 국박이 역박시설을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제기하고 있다.

“30년 묵은 박물관 숙제를 해결할 좋은 기회다. 숙원이 풀린다면 전주박물관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공간적으로 더 넓은 부지에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 잔디밭 등 공원같은 박물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입구 땅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박물관과 전주 역박이 공간적으로 이어지게 돼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국립과 시립이라는 현 체제에서 이 공간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각자의 고유 특성을 조화롭게 보여주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홍 관장이 이날 인터뷰 중에 가장 강조한 말이 ‘담장 없는 공원’이다. 70년대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문과 본관까지 이어진 대리석 계단 대신 담장이 없고 푸른 잔디가 방문객을 맞는 그런 공원.

“철문과 담장이 없는 박물관 광장 잔디밭에서 맘껏 즐기는 방문객들을 상상해 본다. 여기에  전주박물관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근현대 서화와 중앙박물관의 컬렉션까지 모아 놓은 복합문화관. 바로 국립전주박물관의 미래다.”

홍 관장은 경북 고령 출신으로 계명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 기획단, 국립김해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 국립대구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 부장, 국립춘천박물관장을 거쳤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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