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은 시집들/사이에/꽃 한 다발을 마냥 올려놨다/며칠이 지났는데/꽃이 시들지 않았다/화병에 꽃을 가지런히 꽂았다/꽃은 줄기가 잘려도/뿌리를 잊지 않았을까/꽃잎에 생기가 돌았다/식탁에 앉은 아내가/웬 꽃, 물었다/꽃이 죽은 줄 알고/버리려다가 살아 있어서,/나는 얼버무렸다/아내는 시적이라고 했다/요사이/아무렇게나 살았던 나는/낯이 화끈거려서/잠자코 밥알만 씹었다” (‘시적인 실업’ 전문)

장수 출신 윤석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걷는 사람)가 걷는사람 시인선의 39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첫 시집 <오페라 미용실>(민음사,) 출간 이후 “젊음의 아프고도 생생한 순간, 그 찰나를 포착하여 ‘이야기’로 만드는 솜씨를 가진 시인”이라는 평을 받은 윤석정 시인이 십여 년 만에 선보이는 야심작이다.

윤석정 시인 특유의 서정적 서사력은 “마흔 번 휘어진 마음”(‘마흔’)을 지닌 마흔 살의 중년이 되어 더 능숙한 힘을 갖는다.

이 시집은 “뭐든 아주 간절했던 스물”(‘스물’)부터 “휘어진 마음을 뚫고 달려오는 전철이 보이기 시작”(‘마흔’)하는 마흔까지의 이야기다.

시인은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가족을 이루고, 가족을 잃고,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으며 현실의 삶을 살아간다. “죽기 살기로 매달린 시/쓰고 찢고 불태운 시작 노트”(‘당연한 일’)는 생활의 무게로 인해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은 시집들”(‘시적인 실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늘 가슴 한편에 “생을 마감하는 날에 쓴 시, 더는 퇴고할 수 없는 시”(‘꽃의 시말서’)를 생각한다.

노지영 평론가는 “그는 시라는 것이 네모난 지면의 한계 속에서 좁아지고 납작해지는 경향을 누구보다 아쉬워하는 시인이었다. 시를 방화벽 안에 가두지 않고, 다른 인접 예술들과 상호 자극을 나누는 장르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했다.

그 말처럼 시인은 시를 노래로 만드는 트루베르Trouvere라는 팀을 이끌며 시를 입체적으로 감각하는 데 앞장선다고 한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수상했다.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선물우체통>, <행복한 문학편지>에 참여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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