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일보가 2년 전 시작한 ‘전북학’이 전라북도 정체성 제고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전라감영이 복원되면서 광주전남의 변두리에서 벗어나려는 전북도민의 노력엔 전북학의 뿌리인 전북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광주전남은 유학마저 전북까지 포함시키려 하고 있지만 전북유학은 광주전남과 다른 부분이 많다.

특히 성리학 도입은 그동안 알고 있던 고려말 경북영주 안향이 처음이 아니고, 부안의 지포 김구 선생이 앞서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조선 성리학의 시발이 전북 출신 유학자로부터 시작되었고, 조선 마지막 간재 선생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도내 전문가들로부터 전북유학의 현 주소와 활성화를 들어봤다. /편집자

― 국내에서 유학과 관련해 전북의 역할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전북학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김병기 교수: 원래는 영남유학에 비해 호남유학이 홀시 받는 정부의 지원과 연구 환경의 차별화로부터 호남유학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고, 호남유학이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전북유학이 부각되지 못했다. 박정희 시대에 퇴계 이황을 부각시키면서 이른 바 ‘퇴계학’이 대세를 이룸으로써 퇴계의 학맥을 잇은 유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퇴계학과 대치점에 위치한 고봉 기대승을 비롯한 호남이나 호서의 유학에 대한 연구는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유학의 대세였던 성리학의 도입에 관한 연구가 조선시대 주세붕이 풍기군(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서북지역에 있던 옛 행정구역)에 백운동 서원을 세워 제향한 고려 말 유학자 안향(安珦)의 학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영남의 유학이 조선 성리학의 정맥인 것으로 인식하는 학문 풍조가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안향 이후 영남 지역 출신 유학자들인 퇴계와 그의 제자들의 위상이 더욱 높아짐으로써 영남 유학이 대세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를 통해 고려 말에 성리학을 도입하는 데에는 안향보다 앞서 고려 말의 문신 지포 김구와 그의 두 자제의 역할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조선 성리학의 시발이 전북 출신의 유학자로부터 비롯되어 그 맥이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로 평가 받고 있는 간재 전우까지 이어졌다는 학설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이에, 전북 유학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이의강 교수: 전북유학이 부각되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지적한다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전북 선현들의 문집(文集)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 일반인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현들의 정신은 그분들이 저술한 문집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데, 현재 번역이 이루어진 정도가 타 지역과 비교할 때 부진한 실정이다. 하루 속히 보다 많은 한문 전적이 번역되어 그 토대 위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김진돈 위원: 조선시대 나라가 없어지려고 할 때 위기에서 구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 바로 그것은 호남의 유학자들이었다. 유학자들은 의병을 모으는데 앞장을 섰으며, 제자들과 식솔들이 함께 달려왔다. 이들은 목숨을 내걸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뛰어들어 혁혁한 공을 세운다. 

임진왜란 때 일재 이항을 비롯하여 오봉 김재민, 김후진 같은 많은 제자들이 목숨을 바쳤고, 호성군 이주는 평양성 전투에 목숨을 걸로 싸웠으며, 이후 33세의 젊은 나이로 기가 다하여 죽었다. 또 이순신과 같이 활동했던 안위, 송여종 같은 장군들도 중요한 분들이다. 병자호란 때는 전주 팔과정(八科亭) 출신들 과거 급제자들이 거의 참전한다. 운암 이흥발, 서귀 이기발, 화곡 홍남립, 그리고 백석 유즙과 봉곡 김동준 등도 죽을 힘을 다했다. 전북 유학은 학문을 하다 나라에 위기가 있으면 몸을 적진에 뛰어들어 바치는 것이 특징이다.

▲변주승: 오늘날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이다. 다양성 존중을 위해 태동한 것이 지역학이다. 지역학은 중앙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특유의 문화를 발달시키고,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전북만의 정체성을 찾아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 이것이 바로 전북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 타 지역과 다른 뿌리 깊은 전북만의 정체성에 전북만의 유학이 있다고 본다.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에서 왜 전북만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김병기 교수: 인문학은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양의 과학이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을 활용하여 사람에게 ‘외부로부터 얻는 이익’을 제공하는 학문이고, 서양의 인문학이 그러한 외물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그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한자자문화권의 인문학은 사람 밖에 있는 외물이 아닌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내성(內性)의 본질’을 연구함으로써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최첨단 과학의 시대는 서양의 과학과 그 과학을 선도한 서양적 사고의 인문학이 중심이 되어 이룬 성과라면 한자문화권의 인문학은 서양의 그러한 학문이 낳은 ‘최첨단 시대’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존재가치를 찾는 인문학이 없는 최첨단시대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21세기는 한자문화권 인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때인데 전북의 인문학이 21세기 한자문화권 인문학의 정체성을 가장 잘 갖추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전북인문학의 중심에는 전북의 유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북 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의강 교수: 전북학의 필요성은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있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북 지역에서 활동했던 선현들의 학문에 대해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정신과 특징을 규명해 내는 연구 성과가 일정 정도 쌓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전북학의 연구 성과를 주목하여 수용하게 될 것이고 그 위상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진돈 위원: 전북만의 유학은 은둔의 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유학자들이 관직에 나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수신하여 인격 완성하에 치중하였다. 그래서 전북만의 유학자들 문집을 보면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심통도(心統圖)에 대한 글들이 많이 있다. 마음의 내면을 이해하고자 부단한 논쟁과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북 유학인 문집을 보면 충과 효가 같이 묻어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전북의 유학인들은 기본적으로 충효정신이 몸에 체득되었다고 본다. 일제강점기도 전북인의 저항 정신과 의병활동은 남달랐다고 본다. 학문만 있고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 자리만 지킨다면 학문의 필요성이 뭐가 필요 있겠나.

▲변주승: 4차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주의 심화’와 ‘소외’, ‘단절’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본래 유학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일방적 경쟁보다 공감(共感) 공유(共有) 공생(共生)을 추구하는 이념이기에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될수록 유학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리라 생각한다.

― 호남 속 전북은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광주전남의 예속화로 발전도 더딜 뿐 아니라 패배의식마저 자리잡아가고 있어 안타까움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가장 전북유학의 재정립이 시급하다고 본다.

▲김병기 교수: ‘예속화’라고 표현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많은 분야에서 전북보다는 전남 광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국학호남진흥원’뿐 아니라, ‘아시아문화의 전당’의 건립, ‘수묵비엔날레의 창립’과 파격적인 지원 등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수묵비엔날레의 창립’은 이미 한국서예를 대표하는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잠식할 우려가 있어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 할 부분이며 ‘한국학호남진흥원’ 역시 전북의 유학에 대한 전북만의 특색을 갖춘 독자적 연구를 저해할 가능성이 많아 예의 주시해야할 부분이다. 광주 전남지역과 전북의 이러한 관계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전북 유학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어야 하고 특색이 있는 진흥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연구 내용과 방식 그리고 행정지원 등 여러 방면에서 전남 광주의 유학과 차별화할 때 전북 유학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의강 교수: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북의 도세는 정치, 경제 방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다. 하지만 유학 방면에서는 충분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호남고전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전북 선현 문집 해제』에 수록되어 있는 간재 전우 선생의 제자들이 남긴 문집의 종류만 살펴보아도, 박병하의 『가헌유고』, 이병은의 『고재집』, 박승겸의 『고진재유고』, 임양호의 『남파문고』 등등 61종이나 된다. 이는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없었던 특별한 학문 집단으로 전북학 재정립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김진돈 위원: 지금 사회는 예악(禮樂)이 없는 시대다. 전북 유학의 본체를 이해하려면 전북만이 가지고 있는 풍류정신을 찾아야 한다. 바로 정읍 무성서원에 가면 현가루라는 편액이 이러한 것을 모두 대변한다. 이곳에 모셔진 최치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우리가 광주전남을 뛰어 넘을 수 있다고 본다. 정읍 칠보에 가면 가사문학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정극인을 만날 수 있지만 가사문학의 원류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가사문학의 중심이 담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 전북이 가사문학의 원류이고 태인이 본 고장이다. 정읍사, 선운사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 전북의 가사문학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선비들이 향유했던 정가와 활쏘기 그리고 서예 더 나아가 전통음식 등을 폭넓게 보아야 할 것이다. 전남을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전북만이 가지는 유학정신을 잘 찾아낸다면 그 속에서 무한한 자긍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북 유학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북 실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학의 비조 유형원, 그리고 상수학에 뛰어난 이재 황윤석, 지리학의 대가인 여암 신경준, 사상적으로 깊이가 있는 석정 이정직 등은 전북만이 가지는 중요한 유교문화 자산이다. 전북의 자연 속에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 자양분을 갖추고 있다. 서화에서 뛰어난 송일중과 이삼만 선생도 전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변주승: 한국유학 그리고 호남유학에서 차지하는 전북유학만의 특성과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연구 발굴하여 확립하는 한편,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재정립해 전북지역 발전의 토대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전북유학이 광주전남과 다른 점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김병기 교수: 큰 범위에서 보자면 다 같은 한국유학이기 때문에 다른 점 보다는 같은 점이 많다. 그러나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광주전남의 유학이 유배자나 은일자 개인의 독자적인 연구력에 주로 바탕을 두고 그들의 학문적 업적을 귀납적으로 수렴한 결과에 대한 연구를 추구한다면 전북의 유학은 발생 당시부터 구사상(舊思想)에 대한 ‘대체(代替)’와 ‘혁신’을 제기하고 있다. 전북 유학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신사상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 불교사상이 지나치게 난만하여 많은 폐해를 야기할 때 불교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으로 유학을 내세우면서 신유학인 남송 성리학을 도입하는 데에 선구적 역할을 한 지포 김구와 그의 두 아들은 그 시대에 신사상을 태동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조선 성리학이 매너리즘 즉 상투성에 빠져 공리공론의 성격을 띨 때 중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과감하게 실학을 주창하여 조선 실학의 비조로 추앙받는 반계 유형원 역시 신사상을 태동시킨 인물이다. 조선 말기 서양의 학문이 물밀 듯이 들어올 때 한국 유학의 불씨를 간직하여 미래의 신사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간재 전우 역시 구사상의 보존자임과 동시에 신사상을 태동시킨 인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북의 유학은 전남 광주의 유학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이의강 교수: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전북 전주가 조선 왕실의 고향인 ‘풍패지향(豊沛之鄕)’이었으며, 그리고 전라도 감영(監營)이 있었던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었다는 점이다. 전라도의 모든 관리들은 전주 객사에 들러 서울에 있는 왕을 향해 부임 인사를 올렸고 풍남문을 거쳐 임지로 출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전북 지역의 유학자들은 일종의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고 중앙과의 문화적 유대성을 의식하면서 보편성, 통일성을 지향하는 학문적 특징을 지녔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향후 연구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해야 할 것이다.

▲김진돈 위원: 전북유학을 전남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제가 유학자가 아니라 직답을 피하고 싶지만, 전북의 유학자 중 간재 전우 한분만 가지고도 비교 대상이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불운했던 시절 많은 제자들이 의병활동에 참여하는 경학공부를 실시했으며, 간재 자신은 유학의 도맥이 끊어지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등도, 계화도 등을 전전하면서 외부와 단절하고 평생을 후학양성에 바친 분이다.
간재의 제자만 전국에 3, 000명 이였고 그의 문집을 보다면 그의 유학정신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유학이란 본성을 이해하는 성사심제(性師心弟)설에서 잘 나타나 있고, 현실에 맞은 행동하는 유학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변주승: ‘유학’ 또는 ‘유교’를 생각할 때 전근대를 떠올린다. 전북유학 역시 전근대에도 빛나는 전통을 이어왔다. 하지만 전북유학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유교문화가 해체되어 가던 ‘근대’이후 그리고 ‘현대’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유학자들이 항일전선으로 나아갈 때 간재(艮齋) 전우(田愚)는 생각을 달리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오랜 시간 전래되어 온 조선유학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간재 전우는 일본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땅에서 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부해(浮海)’를 선택해 부안 계화도로 거처를 옮겨 강학(講學)에 집중하였다. 그 덕분에 전국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가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이 계화도에 몰려들었고, 결국 간재 문하에서 3천여 명의 제자들이 배출되어 근대 조선 유학의 꽃을 피워냈다. 당시 간재 전우 문하에서 수학한 전북지역의 금재(欽齋) 최병심(崔秉心), 고재(顧齋) 이병은(李秉殷),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등이 조선유학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해방 후 그리고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유학의 가치를 새롭게 연구 보존하고 계승하여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여기에 오늘날 전북유학이 갖는 역사성과 가장 주요한 특징이 있다 하겠다.

― 전북유학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김병기 교수: 사실상 안향보다 앞서 성리학을 도입하는 데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많은 지포 김구가 유학교육을 펼친 곳이 전북의 부안이며, 그의 두 아들 또한 유학 진흥과 신유학으로서의 성리학을 보급하기 위해 교육뿐 아니라 공자에 대한 제향 기능을 겸한 향교 즉 당시 원나라에서 성한 제향공간과 교육공간을 겸한 형태의 향교를 한국 최초로 강릉에 건립하였다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그런 학문적 정립을 바탕으로 전북을 한국 성리학의 태동지로 자리매김하고, 그러한 자리매김을 바탕으로 전북을 한국 성리학 나아가 한국 유학의 성지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국 실학의 비조인 반계 유형원과 그의 뒤를 이은 전북의 실학자들에 대한 연구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상황에서 한국유학의 불씨를 지킨 간재 전우에 대한 연구도 보다 더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북은 다시 한 번 미래 문명을 열 ‘신사상의 태동’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전북 유학 활성화의 필요성과 그 지향점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이의강 교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전북 지역에 전해지는 중요한 한문 전적들을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 번역하여 간행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고향인 부안군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전북 선현 문집 해제』에 『금하유고』, 『남파문고』, 『남하유고』 등등 28종의 문집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 『중당유고』와 『후창집』 두 종만 번역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김진돈 위원: 전북유학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집을 수집하고 그 문집 속에 있는 전북유학정신이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유학자를 정리하고 집안에 남아있는 각종 자료와 문집을 해독하고, 더 나아가 유학자들의 정신세계와 연혼관계를 알 수 있는 묘비를 정리한다면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북에는 각종 다양한 자료가 집안에 사장(死藏)되어 있거나 가치를 몰라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각종 홍보를 통하여 자료를 한곳으로 모아 거시적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활용한다면 많은 스토리가 나올 것으로 본다. 
아울러 집적화된 고문서를 토대로 첫 번째 번역사업, 스토리텔링, 그리고 가치가 있는 것은 문화재 지정 등이 시급하다. 이후 정부기관의 정극적인 협조로 관련 전문가 양성, 전북유학 힐링 코스 및 프로그램 개발 등의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말로 이렇게 하면 전북만의 차별화된 전북의 유학정신이 드러날 것라고 생각된다.

▲변주승: 먼저 전북유학 관련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정리 및 영인, 번역과 전북유학 관련 인물사 정리 및 계보와 학파의 정리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전북유학의 특성과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면서, 일반 연구자뿐만 아니라 청소년 시민들도 그 성과를 공유하며 유학의 긍정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도청에서 역점 사업으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전라유학진흥원과 같은 거점 기관과 대학 연구소, 지역 언론, 지역 문화원, 시민단체들이 전북유학의 정립과 활성화를 위해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정례적이며 다양하게 함께 활동하는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도내에 산재해 있는 향교 및 서원 등을 도민이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해 달라.

▲김병기 교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교육과정을 참신하게 구성하며 교육방법을 혁신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원론적으로 한자교육이 되살아나야 한다. 모든 전통문화가 한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자를 모르고서 어떻게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번역본으로 공부한다고 해도 한자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전통문화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되면 사람들은 자원하여 향교나 서원을 찾게 될 것이다. 물론, 한자 교육의 부활과 강화는 단지 전북만의 과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자 과제이지만 대한민국 전체가 움직이지 않을 때 전북이 선도적으로 지역적 특성을 갖춘 교육과정의 운용하여 한자 교육을 강화한다면 전북은 문화의 힘이 가장 강한 지역으로 부상할 수 있으며 그러한 문화의 힘은 자연스럽게 향교나 서원의 창의적 활용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이의강 교수: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전후 출생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향교 및 서원은 젊은 세대를 포함한 은퇴자들이 만나서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가문에 소장되어 있는 족보를 가지고 와서 읽는다든지, 각 집안의 한문 가훈을 소개한다든지, 그 지역 출신 선현들의 문집을 읽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서로의 인생 경험을 교류한다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절로 증진될 것이고 지역 문화도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김진돈 위원: 향교와 서원이 유학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향교나 서원을 가보면 그래도 그 지역의 문집과 족보 그리고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벽장 속에 꼭꼭 감추어 두고 도난당하지 않기 위하여 외부인에게는 공개 자체를 금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한 후 지역민과 소통하는 지역의 향토사 강좌가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주향교라면 가장 가까이 있는 남양사, 옥동사, 구강재 관한 내용을 다 품으면서 지역에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한다. 또 김제향교에서는 김제 주변의 서원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담으며 서예문화까지 같이 곁들인 다면 정말로 풍성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예전에는 서원에서 모든 대소사를 다 관장하고 향음주례를 실시하며 지역민의 교화에 힘썼다. 즉 향교와 서원은 어른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가서 쉽게 달려가서 물어보는 분이 바로 어른인 것이다. 바로 지역의 향교와 서원은 지역민들이 쉽게 가서 물어보고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새로운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자료가 많고 어떤 질문을 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끼워야 한다고 본다.

▲변주승: 문화재청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기반으로 학계 언론계 및 지역 문화단체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향교와 서원이 단지 제사를 모시는 공간으로 국한되지 않고, 청소년 교육기관, 전통문화와 유교문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어 해당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향교 서원에서 숙박 체험이 가능하도록 하고, 시설 개선 및 과감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 올해 어렵게 전라유학진흥원 건립을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 중앙부처는 아직도 전북유학을 광주전남 속에 가두려고 한다. 도내 지자체와 정치권 등이 중앙부처에 설득할 수 있는 역사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김병기 교수: 연구자들이 나서서 보다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연구하여 시대에 맞는 전라유학진흥원 건립 필요성을 정립하고, 지자체는 정치권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 전라유학진흥원의 건립이야말로 조선 말기로부터 항일시대를 거쳐 산 우리 지역의 큰 유학자 유재 송기면 선생이 주장한 ‘구체신용(舊體新用)’의 정신을 살려 옛 것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 시대에 맞는 정책을 제안함으로써 실현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의강 교수: 도내 단체와 인사들의 전북 유학에 대한 관심은 억지로 강요한다고 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전북 유학의 현재적 가치를 발굴해 제시해 줄 때 비로소 자긍심을 지니게 될 것이다. 다시 부안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부안 하서면 출신의 유학자 고제안(高濟安 1845~1927) 선생의 『석천유고(石泉遺稿)』에 「유림시사서(儒林詩社序)」라는 글이 있다. 고제안 선생은 이 글에서 부안 사람들은 부안을 ‘시향(詩鄕)’으로 인식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부안에서 신석정 시인이 활동하여 한국시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김진돈 위원: 전북은 전라도의 수부로써 매우 중요한 정치, 문화적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조선시대 충청도나 경상도를 보더라도 수부가 지속적으로 바뀌어졌지만 전주는 오로지 장소가 바꾸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전주라는 지리적 요건이 매우 중요했으며, 만경강을 끼고 한쪽은 산간이고 한쪽은 평야지로서 두 곳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감영이 있음으로 다양한 행정이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문화가 파생되었다. 한지를 만들어 다양한 종류의 목판을 찍어냈고, 전북의 승경에서 시회를 열어 자신들의 심경을 토로했던 곳이다. 이제라도 늦었지만 전라유학진흥원에서 전북인들의 문집을 수집하고 고문서를 수집하여 체계화한다면 정말로 중요한 것이 나올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인물을 연구하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족보이다. 또 더불어 전북의 성씨가 들어가는 족보를 수집하고 연구한다면 정말로 타 지역과 구별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전북인들은 넓은 땅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관직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관직이 빈약하니 비석이 아담하다. 그리고 넉넉지 않지만 문집 속에는 많은 함축적인 내용이 들어 있으며, 작은 빗돌 속에도 찬자와 서자가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북 유학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속 내면에서 인간의 마음을 알고자 부단한 노력을 볼 수 있다. 작은 문집속에도 공자가 추구했던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변주승: 호남유학에서 차지하는 전북유학의 역사성과 그 특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지속적인 성과의 발굴 및 홍보 등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라유학진흥원 설립을 계기로 이를 극복해나가야 한다.

― 코로나19로 도민들의 삶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도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

▲김병기 교수: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만남이 정지된 것 같은 '언택트'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을 비관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 깊이 있게 대화하는 '콘택트'의 지혜를 발휘해 보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동안 우리는 내적인 수렴이나 성찰 보다는 외적이고 동적인 활동을 주로 하고, 행복 또한 나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길을 찾기 보다는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한 행복을 추구한 경향이 있었다. 이제 코로나 시대의 '언택트' 사회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만나 나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나’를 찾게 되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많은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자연스럽게 생기리라고 생각한다.

▲이의강 교수: 어려울 때일수록 상대방을 부정하거나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내가 먼저 배려하고 다가서야 한다. 우리 도민들의 연대와 협동의 정신은 이미 이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어려움을 반드시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김진돈 위원: 우리 전북도는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삶 속에서 배어있는 유교문화 자산이 가득한 땅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농경사회의 표본이자 절의문화의 중심지로서 가장 본질적인 유교문화 자산을 소유한 땅입니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의 삶은 누구를 이겨서 잘 살려고 했다. 넓은 아파트에서 좋은 차 타면서 폼잡고, 높은 자리 있으면 아랫사람을 하시(下視)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이 시점에 강함만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바로 유연함을 마음속에 가져야 한다고 본다. 자연을 무시하면 안 된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하고 미혹에 빠질 때가 있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나의 본심을 한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번 코로나는 통해서 다시 한 번 자성의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한다. 유학 정신은 어떤 큰 것이 아이다. 반성하는 삶이다. 나쁜 습관을 하나만이라도 바뀐다면 아마도 코로나는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 본성의 순박함을 지닌 전북인들의 유교문화는 배려와 존중 그리고 수기치인이다. 이 어려운 코로나 시기를 잘 극복하여 전라도의 유학정신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전라유학진흥원이 탄생되기를 기대하고 희망해 본다.

▲변주승: ‘위기’라는 단어에는 ‘기회’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위기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 전북도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친다면 코로나 사태는 반드시 종식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서로를 배려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성숙한 시민문화가 정착되어, 미래 전북지역은 진정한 공동체 의식이 뿌리내린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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