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2020 경자년 한해도 12월을 맞았다. 이때 새삼 벤자민 프랭클린의 ‘당신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올 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모두를 잡아두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매년 이때쯤이면 한해를 마무리하느라 마음들이 바빠지며 각종 송년모임 기대로 들뜨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연말 모임을 갖지 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달라는 당국의 방역 안내문자가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마 이번처럼 그 어떤 감염증도 이렇게 오래 지속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매년 그 해의 사회상을 담은 하나의 단어를 특정해 공표해온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 측도 올해는 선정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지구에 걸쳐 인류의 일상에 끼친 영향이 압도적이어서 관련 단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고도 20년이 된 금년에는 총선 정국에서 비롯된 정치적 여파에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민생이 바닥을 쳤다. 그런 가운데 부동산 값 폭등으로 전반적인 사회정서는 기복이 심한 한해가 돼 버렸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로 문화예술계는 공연장 폐쇄와 지역축제의 취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한국 대중가요 100년의 해에 유독 트로트가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오히려 다른 장르와 달리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송전파를 탄 “신종 트로트”라는 새로운 풍조를 탄생시키며 대중들의 소견거리가 됐다.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한해도 세밑으로 접어든다. 연초에 새해에는 논어에서 인용한 ‘본립도생’(本立道生) 곧 ‘기본이 바로 서면 도가 생긴다’를 표어로 내세운 데도 있다. 사회나 조직이 바로 서지 않으면 원칙이 무너지고 질서가 흐트러진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회적으로는 코로나 사태에다 정치적 대립과 분열에 극심한 민생경제가 겹쳐 기본이 갖춰지지 못했다. 이 근본이 미흡하다보니 어려운 시국을 헤쳐 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회 전반에 정서적 심기증 현상도 나타났다.
그렇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개인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다른 측면에서는 각자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가 ‘시간 낭비는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했지만 집에 틀어박혀 보낸 시간이 낭비로만 여겨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어쩜 우리는 복합적인 현대 생활 가운데 톱니바퀴처럼 주어진 틀 속에서 기계적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물질적 여유는 누려왔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위해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질주해 왔었다. 그러다 부딪힌 코로나 장벽은 지리멸렬한 삶의 문장에 쉼표를 찍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물질만능주의가 오히려 정신의 공허함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사회는 더욱 퇴폐적이게 되고 거칠어졌으며 인간적인 감성이 메말라진 자리에는 기계적인 관성만이 가득 차게 된 모양새였다. 그래서 사회 공동체 정신에 앞서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만 도모하는 선자위모(善自爲謨)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게 되면서 부유한 것과 행복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에 첨단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정서적 소통을 단절시키고 사회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희석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환경이나 외부에서 얻어지는 충족보다도 내면에서 솟는 정신적인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게 됐다. 즉 행복감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얻는 일과성 쾌감의 충족보다 정신적으로 느끼는 만족의 충만을 추구한다.
이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일상이 억압된 시기를 보내며 우리 모두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과거의 추억도 되새겨보며 지금의 현실을 성찰하며 미래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행복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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