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숙 국민연금공단

 

 

가끔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읽어보곤 한다. 지난 주 읽은 글 중에 문화센터에서 방송댄스를 배우러 다닌 이야기가 있었다. 방송댄스는 TV프로그램처럼 아이돌 가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다.
 당시 둘째 딸이 고3이었다. 학교에서 심리테스트 검사를 했는데, 불안 지수가 지나치게 높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공부 스트레스였다.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라는 조언이 있었지만 싫다고 했다. 아이의 공부 스트레스를 방송댄스로 줄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신청을 했다.
 둘째 딸은 내키지 않아 머뭇거렸다. 어쩔 수 없이 “그럼 엄마도 한 번 배워볼까?” 하며 손을 이끌고 갔다. 몸치에다가 춤이라고는 젊은 시절에도 추지 않았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당시 살을 빼겠다고 열심히 걷고 식사도 조절하고 있던 때라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 번을 나가서 시스타의 노래 ‘러빙유’ 한 곡을 배우고 그만두었다.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그래도 둘째 딸은 그 덕분인지 고3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나도 몸을 흔드는 것에 거부감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뭐든 새로 시작하는 것을 쉽게 한다.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본다. 잘 안 되면 포기도 빠르다. 운동도 그렇고, 취미활동도 수없이 시도해봤다. 오래 하지 못하다보니 시도한 것에 비해 성과는 많지 않다. 어찌보면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는 사람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를 맞이하며 그동안 내가 시도한 것들과 포기한 것들을 돌아보았다. 신기한 것은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의 내 인생에 많이 녹아있다.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치밀하게 준비하여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성공확률이 높다. 반면에 좀체로 시작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특히 나이가 들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시기가 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게 된다. 은퇴 후에 많은 사람들이 뭘 해야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나처럼 일단 저지르고 보는 유형은 노후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어려움이 덜하다.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없다. 시작해보고 재미없으면 안 하면 되지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하면 시작이 어렵지도 않고 성과가 없어도 조급한 마음이 덜할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몸이 통통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해서 조금 줄였다가는 다시 찌는 요요현상을 겪곤 했다. 요즘 관절에 이상이 와서 다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평소에 하던 방법으로는 요요현상을 막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근력강화운동을 시작했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 헬스클럽을 방문하여 뱃살을 출렁이며 운동을 하자니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일단 개인트레이터를 신청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일년이 지나자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가 나타났다. 음식에 대한 욕구를 참지 못해 가끔 다이어트의 룰을 어기기도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근근이 운동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퇴직하면 다양한 분야를 체계적으로 독서해야지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이 생겨 글쓰기도 시작했다. 누가 형편없는 내 글을 읽어 보겠는가 하는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일단 과감하게 시작을 했고 책쓰기에도 도전했다. 가족들은 ‘또 얼마나 하다가 그만두려고 그리 요란스레 시작을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책을 출판하자 깜짝 놀랐다. 은퇴준비를 하며 가장 잘 한 것이 글쓰기에 도전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경험한 글을 쓰는 것은 은퇴생활에서 다른 어떤 일보다 보람있을 것이다.
 굵은 주름이 내려앉는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돌아보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허무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시도하여 앞으로 나아가면 그 만큼은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도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삶이란 살아온 과정이고, 인생은 결국 자기가 시도한 만큼 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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