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솔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지원실

어린 시절 내 별명은 호박이다. 태어났을 때 무척 못생겼다고 한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라는 동요를 ‘사과’ 대신 ‘호박’으로 바꿔 부른 기억이 있다. 아버지마저 호박이 사람 되었다고 놀리곤 한다.
 어릴 적 내 사진을 보았다. 정말 호박같이 생긴 갓난쟁이다. 귀여운 아기에게 호박이라는 짓궂은 별명을 지어준 어른들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호박이 사람 된 내 모습을 보며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감사하고 있다. 어쩌면 내 모습이 변한 것은 할머니가 먹여주었던 사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다, 연년생 남동생과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내가 태어나면서 할머니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외모 때문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사자 갈기 같은 시커먼 머리, 눈만 동그란 못생겨 볼품없는 손녀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라고 구별도 되지 않아 분홍색 머리띠를 매고 외출했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이지만 못생겨서 놀림 받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게 사과를 먹였다. 아마 사과를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갓난아기라 수저로 긁어 먹였다. 수저에서 입으로 넘겨지는 달콤한 사과즙과 자잘하게 다져진 과육이 아직도 내 기억에 깊숙이 박혀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때를 기억할 정도이면 할머니는 꽤 오랜 시간 나를 신경 써주신 것 같다. 할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다행히도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못생겼다는 이유로 놀림당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입학한 그해 겨울,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항상 바빴던 어머니는 나와도 바쁘게 이별을 했다. 졸지에 할머니는 우리 남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애지중지 키운 손주들이 어미 없는 자식이라 불쌍히 여겼다.
 할머니는 주말마다 짜파게티를 끓여 주셨다. 어머니가 있었다면 스파게티를 먹었겠지만, 할머니로서는 어린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음식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 남매는 토요일마다 할머니와 함께 앉아 짜파게티를 먹었다. 배불러 먹기 싫다며 손사래를 쳐도 남은 면을 수저로 입속에 넣어주었다. 마지막 한 입까지 먹어야 할머니 속이 후련했나 보다. 덕분에 평생 먹을 짜파게티를 어릴 적에 다 먹었다. 가끔 동생을 만나면 할머니가 끓여준 짜파게티가 생각나 얘기를 나누곤 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을 다녔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자정이 지나서 집에 도착하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는 보행기를 끌고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할머니는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집안에서조차 거동하기 힘들어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문병을 가면 할머니는 병실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우리 남매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병세가 악화되어 할머니의 생활 반경은 침대로 좁아졌다. 직장과 학업에 바빠 할머니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다. 가끔 할머니를 뵈면, 밥 드실 힘도 없는데 힘을 내어 내게 웃어주었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요양병원을 자주 찾았다. 할머니의 지친 기색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 보였다. 고통에 찡그린 얼굴이지만 따뜻한 손을 조심스레 내밀며 맞아주었다. 음식을 가져왔지만 드실 수가 없었다. 치아도 기력도 문제였다. 다음날 나는 사과와 숟가락을 가져갔다. 기력이 약해진 할머니에게 사과를 먹여 드리고 싶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내게 해준 것처럼, 나는 수저로 사과를 긁어 할머니에게 먹여드렸다. 사과 하나를 드시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다음에 만난 할머니는 영안실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편안해 보였다. 코로나19로 두 달 동안 손녀가 코빼기도 안 비친다고 서운해 하셨지 싶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다음 생에 꼭 만나자고 약속했다. 할머니 두 손을 마지막으로 움켜쥐고 불길 속으로 보내드렸다. 벌써 추석이 되었다. 내 마음에 비가 내리듯 이번 여름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채로 빠르게 지나갔다. 명절 차례상에 사과를 내었다. 호박을 사과로 만들어 준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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