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지인 결혼식에서 아끼는 후배를 만났다. 그는 고향 윗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1년 후배라 만나면 내게 늘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나 역시 후배를 반갑게 맞는다. 반가워 악수를 했는데 손을 놓기도 전에 국민연금에 대해 물었다. 국민연금을 내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잔소리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물었다.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가 사무실에서 전화로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
 잠시 놀랐다. 후배가 나보다 생년월일이 빨랐기 때문이다. 40십여년 동안 나를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불렀던 후배였는데, 나이가 같았다. 출생일은 나보다 9개월 정도 빨랐다. 아끼는 후배가 나와 동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후배 말로는 나이보다 학교를 늦게 갔다고 한다. 우리 세대는 주민등록이 1년 정도 늦게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주민등록이 정확히 되어 있었다.
 후배가 선배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흔하다. 직장 동료들 중에도 같은 학교 선후배가 많은데, 후배가 먼저 정년퇴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주민등록이 늦게 된 이유이다. 퇴직하는 후배는  평생 선배로 모셨는데 퇴직은 자기가 빠르다는 넋두리를 가끔 듣는다. 이것은 동향에서의 질서는 학교가 나이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외국인과 다르게 묻는 게 있다. 나이, 직업, 고향. 출신학교이다. 사투리가 비슷하면 고향을 묻고, 또래가 비슷하면 나이를 묻는다. 학교나 나이에 따라 사회 질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말투가 달라진다. 동생, 형님이라는 호칭을 쉽게 사용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나이를 잘 묻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높임말이나 낮춤말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아 나이를 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어떤 외국인은 배우자의 나이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자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연상커플이라고 할 정도로 나이 강박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주민등록으로 본다면 사실 나는 후배보다 2년이 늦다. 나는 주민등록이 실제 나이보다 2년 늦게 되어 있다. 아버지가 군대에 있을 때 내가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제대할 때까지 혼인신고도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면 부모님 혼인신고일이 내 출생신고일이다. 
 주민등록이 늦게 되어 있은 것은 나뿐만 아니다. 친구들 대부분 1년 정도는 늦다. 60년대에는 신생아 사망률이 높아 출생신고가 늦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 아이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출생신고는 돌이 지나서 많이 했다. 돌잔치의 유래도 신생아 사망이 많아 출생 후 한해를 넘기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집안 동생은 본인의 실제 나이보다 세 살이나 많게 되어 있다. 이유는 형이 신생아때 사망했는데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동생이 형의 이름과 주민등록을 물려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대를 했다.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신생아의 생사가 문제가 되었으니 출생신고는 이제 살았다고 판단했을 때 한 것 같다. 
 한때 주민등록을 늦게 되어 있어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군대 영장이 늦게 나왔고 친구들에게 주민등록이 늦다는 이유로 동생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기 전에는 주민등록을 바로 잡을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도 했다. 요즘은 다르다. 부모님의 선견지명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친구들에 비해 직장생활을 2년을 더 할 수 있다. 요즘 친구들은 임금피크제를 들어가는데, 주민등록이 늦게 되어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
 출근을 해서 후배의 국민연금을 확인해 보았다. 후배는 직장에서 2달 납부만 했고 지역가입에서는 전액 미납되었다. 미납된 금액은 징수권이 소멸되어 납부할 수가 없다. 미리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후배에게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나의 말을 신뢰하고 본인과 배우자까지 가입을 하고 자동이체까지 신청했다. 나이는 같을지 몰라도 오늘만큼은 선배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학교 선후배는 고정된 관계이다. 그 관계가 깨기가 쉽지는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1년 후배에게 기존의 학교 선후배로 고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 전화를 놓기 전에 후배에게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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