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설 별의별협동조합 이사장

이 문구는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모아나의 할머니가 어린 손녀 모아나에게 한 말이다.

배움이란 주변의 사람과 현상, 경험과 대응을 보며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배움을 주어도 깨치지 못하는 사람에겐 ‘배움’이란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반면교사(反面敎師 :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나의 가르침으로 삼는다)’와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인격을 연마하는데 도움이 된다)’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듯 배움은 상당부분 본인의 숙고와 해석, 그리고 깨달음을 조건으로 한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배움’의 주체가 한 집단, 지역, 나라, 지구로 확대될 때엔 어떨까. 우리가 이 지구에 사는 이상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에선 쓰레기를 계속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고, 또 어떤 나라에선 대규모 공장과 에너지를 사용하여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또 어떤 글로벌 기업은 임금이 싼 나라에 공장을 세워 어린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하기도 한다.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지구에 함께 사는 이상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로지 나, 우리 가족, 우리 지역, 우리 나라만을 생각한다. 다행히 기후환경, 복지, 교육, 인권 등등에 관하여 전지구적 협약기구들이 있지만 실효성에서 미비한 수준이다. 이 중 지구온난화에 관하여 1988년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설치를 시작으로 국제적인 협약과 국제사회의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2017년은 전년도 대비 2.4% 증가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어진 곳에서 자연이 회생하는 현상을 목도한 사람들은 인간이야말로 자연의 최대 적이라는 탄식을 하였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불과 장마와 같은 기상이변을 보며 이와 같은 현상들이 전 지구적 기상위기라는 것에 동감했다. 북극의 빙하는 녹고 있고 나무들은 기공을 닫고 있으며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하늘의 기류 변화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거칠어졌다. 한국 또한 50여 일간의 장마에 지역 곳곳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로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아예 한 마을이 물에 잠긴 곳도 여러 곳이다.
이처럼 사태가 아주 심각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굉장히 미온적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깨달으라며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경제우위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목숨을 담보로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집 한 채를 부수는 데 차 한 대가 6년간 온실가스를 내뿜는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하물며 한 동네, 한 지역을 부수고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데엔 얼마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인가. 대규모 빌딩 단지를 짓는 데엔 또 얼마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인가. 전국적으로 실질주택보급률이 110%를 상회하고 국민의 15%가 다주택자라는 통계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는 수도권에 36만호 규모의 택지공급을 하겠다고 밝혔다. 집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서도 계속 집들을 지어대는 방책을 내어놓은 그들은 도시가 건설될수록 인구가 밀집될수록 온실가스 배출은 걷잡을 수 없고 동시에 우리의 터전은 점점 더 좁아질 것이라는 배움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늦었다고, 위험하고 긴급하다고 외치고 있는 이때에도 신도시는 건설되고 재개발은 추진되며 고층 빌딩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비현실적인 SF영화를 보는듯하다.

우리를 아우르고 있는 공기와 숲, 물과 바다, 들판의 풀들과 새들은 투표권이 없어 정치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더욱 단호하고 위험하며 무차별적인 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배움은 우리를 인도하지만, 배우지 못한 자들은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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