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균 마을건축학교 대표

판소리란 목에서 피가 터지고 똥물을 먹어가며 공부를 해야만 하는 대단한 것이라고 알려지던 시절, 몇 명의 광대들이 모여 작당을 했다. 예전 소리꾼들이 명창이니 국창이니 하며 높이만 높이만 오르려 하던 시절에도 마을소리꾼은 있었다. 임방울이나 이화중선만큼 대단한 소리공력은 아닐지언정 마을의 경사나 애사가 있을 때면 여지없이 나타나 그 자리를 만들어 내던 “지역기반 광대”!! 바로 이 사람들이 또랑광대다. 소리의 깊이나 예능의 전문성을 떠나 또랑(작은 물길)을 기반으로(바꾸어 말하면 마을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마을사람들의 삶을 모두 다 알고 있으며, 그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예능인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시대의 또랑광대가 되어보자고…. 그 후, 아직 생존해 있는 또랑광대 들을 찾아 다니며, 광대의 기본이 예능의 능력이 아니라 삶을 공유를 할 수 있는 마음이요,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집을 짓는 것은 어떨까?
  한옥 일을 하는 목수들을 만나보면 열에 아홉은 본인은 ‘궁궐목수’에게서 배웠다거나, ‘절집을 짓는 목수’라고 은근히 자랑이다. 그만큼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목수라고 자랑을 하고 싶은거다. 남대문을 짓고, 대원사를 짓고, 문화재를 수리하고, 허다 못해 재실이라도 지었단다.
  그렇다면 우리 옆집은 누가 지었을까? 앞집 청웅 아재 집은 또 누가 지었단 말인가?   절과 궁궐 말고 우리가 나고 자랐던 우리의 살림집들을 지은 목수가 있을진대, 아무도 내가 우리동네 집을 지었다고 자랑하는 목수를 만나볼 수 없는 건 참 묘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동네 집들을 짓는 목수를 깔보며 표현하는 것이 있으니 ‘칙간목수’다. 요즘말로 하면 화장실이나 짓는 목수라는 말인데, 절집 목수들이 마을목수를 우습게 여기며 부르는 말이 아직도 남아있는것을 보면 자기 또랑을 가지고(마을이라는 기반을 가지고)집을 지었던 목수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런 말도 있다. “길가는 나그네에게 집을 맡기랴!!”  쉽게 말해 내 집을 지어달라는 것은, 건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집 숫가락이 몇 개인지, 몇 명 이서 살 것인지, 경제적 능력은 얼마인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어줄 수 있는 목수가 필요하다. 결국 내 이웃이다. 살림집을 지을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은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해주는 마음이다. 어려서부터 지게를 만들고, 논두렁을 다지며 흙과 나무가 익숙한 농부들은 때론 집을 짓는 목수이기도 하고 때론 달구지를 만드는 목수가 되기도 한다. 물론 봄가을엔 바지런한 농부이고…. 이런 마을목수가 있었다!!  이런 마을 광대가 있었다!! 우리에게….
  옆집 할매네 서까래가 썩으면 알아서 나무를 준비하고, 뉘집 담벼락이 허물어지면 흙과 볏집을 가지고 벽을 치는 ‘다재다능 전지전능한 맥가이버 아저씨’가 우리의 마을공동체에도 있었단 말이다. 마을에 초상이 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고, 동네 울력이라도 있을 때면 막걸리 한잔에 구성진 들노래 가락 뽑아내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있었단 말이다. 멋지지 아니한가? 아니!! 참 살만한 세상이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지 않은가? 
  우리는 최고가 되기 위해 하늘만 쳐다보고 뛴다. 높이 높이 오르려고만 한다. 다들 바쁘다. 옆집에서 사람이 굶고 있어도 모른다. 그래서 피자를 시켜먹고 치킨을 시켜먹으면서도 쌀 한 되를 나눌 줄 모르는 상황이 된다. 결국 공동체가 흔들리면서 사회시스템이 멈춰버린 거다. 사회안전망이 가동될 동력을 잃어버린 거다. 마을이 사라져 가고 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늘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또랑광대가 되어 판에 설 때도, 측간목수가 되어 집을 지을 때도…. 놀이판이 들썩거리며 한바탕 신명이 판을 감아 돌아도, 집 짓는 기술이 제법 몸에 익어가고, 내가 지은 집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도 그 허전함은 커져가기만 했다. 
  건축이란 건물을 짓는 일일까? 광대란 잘 노는 놈일까?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내 이웃들과 함께’라는 것이 빠져버리면 기술만이 남아버린다.  차가운 기술만…. 그러나 작은 재주라도 ‘우리동네에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기술’은 ‘따뜻한 기술’이 된다. 인간의 체온을 가진 기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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