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효 국민연금공단

새벽 2시.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핸드폰을 들고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다. 핸드폰을 보는 아내의 눈이 곧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만 같다. 아이들이 처음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이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형국이다. 아내가 괜히 여행을 보냈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했다. 경유지에 도착할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 아이에게서 연락이 없다. 혹시 경유지에서 엉뚱한 터미널로 가서 비행기를 놓친 건 아닐까. 수하물은 제대로 챙겼을까. 문자를 보냈지만 대답이 없자 아내의 걱정은 자꾸만 깊어져갔다.
 지금 두 딸아이는 해외여행 중이다. 둘째는 큰애와는 달리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다. 이번에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아 각각 떠났다. 당초 큰애 혼자 여행을 계획해 몇 달 전에 항공기를 예매했는데,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둘째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둘째는 직항로가 없어 부득이 경유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그때부터 아내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요즘 둘째는 하루 종일 집에서 지냈다. 대학수험생활에서 해방되었지만 아내는 고행의 시작이었다. 매일 같이 놀아 줘야 했고 요구도 많아 조금 고달팠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큰애가 유럽여행을 간다는 말을 듣고 아내는 둘째를 함께 보냈다. 잠시라도 고행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경제적인 부담도 기꺼이 감수했다. 항공권 예약이 문제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출발 전날, 둘째는 양주에 있는 큰애에게 미리 가기로 했다. 여행 경로와 합류 장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아내는 양주로 가는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었는데, 차 안에서 둘째가 혼자 떠나는 것이 무섭다며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아내는 당황해서 여행을 포기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가겠다고 하여 보내긴 했지만 마음이 뒤숭숭해했다. 먼 길을 떠나는 아이의 눈물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둘째의 첫 해외여행을 보면서 내가 오래전 겪었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해 겨울, 불안한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생 때였다. 처음으로 혼자서 먼 길을 떠났다. 강원도 태백에 사는 누나에게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떠나기 전날 밤 기대와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무사히 버스를 탔는데 한참을 가더니 버스는 어느 낯선 정류장에서 멈췄다. 분명히 무정차를 탔다고 생각했는데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목적지는 태백이었다. 문제는 도착 시간이 한밤중이라는 것이었다. 눈까지 와서 더 지체되었다. 한밤중에 도착한 태백은 암흑천지였다. 게다가 눈바람이 얼마나 매섭던지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다. 공중전화도 고장이 나서 절망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러다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 희뿌연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누나였다. 너무 반가워서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처음 혼자 갔던 여행의 낯설음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새벽 3시가 지나서 먼저 출발한 큰애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종 도착지인 빈에 먼저 도착해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동생은 경유지에서 비행기를 갈아탔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큰애에게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잠자리에 누웠다.
 삶은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다.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세상은  절벽인지 가시밭길인지 알 수가 없다. 대학 수능을 마친 둘째의 첫 여정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준비를 했어도 세상을 향한 걸음걸이가 몸을 가눌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자주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연하게 혼자 걸어가야 한다. 가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 오늘처럼 혼자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잠든 아내의 옆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는데 둘째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비행기 도착했어! 언니 만났어.’ 육성으로 듣지 못했지만 새로운 곳에 첫발을 내딛는 불안과 흥분이 느껴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항 밖을 조심스럽게 나가는 아이의 발걸음이 아름답게 보인다. 위태롭지만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이다.
 아내는 언제 깼는지 문자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을 청한다. 나도 긴장한 탓인지 옆구리가 아프다. 가족이 모일 때면 가슴 졸였던 둘째 아이의 첫 해외여행이 가끔 기억난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