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얼마 전 어느 행사장에서 스님이 역지사지란 내용으로 축사를 했다. 초등학교 장애인의 따뜻한 이야기였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 한번 경험을 해 보면 그 사람의 불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한 시골 학교에 장애를 가진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가난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5살 무렵에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여의었고 그 사고로 소녀는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한쪽 눈과 왼쪽 팔을 잃었으며 다리도 심하게 다쳐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환경에도 소녀는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성격이 차차 변해갔다.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았고 점점 말수도 줄어들었다. 아침이면 할머니에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날이 많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소녀를 달래어 학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유는 반 친구들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소녀의 절룩거리는 걸음걸이 흉내를 내며 놀렸다. 그럴 적마다 소녀는 울음을 터뜨렸으며 다음날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소녀는 자신을 놀리는 반 친구들도 싫었지만 심한 장애를 가진 자신은 더욱더 싫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는 친구들은 소녀를 괴롭히고 무거운 가방을 맡기기도 하였다. 소녀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럭저럭 1학년을 마치게 되었지만 출석한 날보다 결석한 날이 많았다.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반 친구들은 소녀를 괴롭혔고 결석도 잦았다. 시골 학교라 2학년이 한반뿐이라 1학년 친구들 모두 같은 반이 되었다. 소녀는 꾀가 났다. 할머니에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대신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산에 가서 종달새 뻐꾸기와 어울려 놀았다. 소녀는 외로웠지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는 혼자 산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일주일을 산에서 놀다가 학교에 간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는 친구들의 가방이 잔뜩 손에 걸고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쓰러졌다. 친구들은 다가와 부축할 생각은 않고 발로 툭툭 차며 주위를 빙빙 돌면서 놀려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나가는 담임선생님이 보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소녀에게 어떤 일이 있으리라고 짐작을 하고, 며칠 동안을 학생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행동을 말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그날도 소녀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내일 준비물을 칠판에 적었다. 눈가리개와 안대, 붕대, 나무막대였다. 다음날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두 명이 한 개조로 나누어, 모두 왼쪽 눈을 가리게 하였고 왼쪽 손을 몸에 묶고 한쪽 다리는 나무를 대고 붕대로 고정하도록 하였다. 학생들을 소녀 모습 그대로 만들었다. 그런 후 선생님은 오늘은 그 소녀가 한번 되어 보자며 자신도 학생들과 꼭 같이 묶고 수업을 하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수업을 마칠 때까지 붕대를 풀지 않기로 학생들과 약속을 하였다. 이제 모두가 자신이 괴롭혔던 그 소녀가 되었다. 한쪽 눈은 보이지 않았고 왼쪽 손이 움직일 수 없었으며 한쪽 다리는 끌며 다녀야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학생들은 선생님과 약속한 것을 어기지 않았다. 수업이 마칠 때까지 아무도 붕대를 벗지 않았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일일이 붕대를 풀어주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소녀는 학교에 결석하는 일이 없었고 친구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소녀의 옆에는 다정한 친구들이 많았고 소녀의 가방은 항상 친구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소녀는 환한 미소를 다시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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