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화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지원실

 

 지난 2월 말이었다. 갑자기 어지러움을 동반한 구토와 설사가 있었다. 며칠만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심해졌다. 견딜 수가 없어 휴가를 내고 병원을 다녀왔다. 나는 직장은 전주지만 가족은 부천에 있다. 금요일 오전 휴가를 내고 일찍 집으로 올라오는데, 부재중 전화가 여러 차례 와 있었다. 번호를 확인하는 사이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사무실 직원이었다. 사무실에 급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놀라지 말고 들으라며 괜찮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물었더니 뜻밖의 소식을 알려 주었다.
 내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주 초 업무협의를 했던 정부부처 주무관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이 났는데, 당시 밀접 접촉했던 내가 감염 가능성 99%라는 것이다. 그 직원은 내가 몸이 좋지 않아 휴가를 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직원은 인터넷을 보라며 이제 우리 공단은 큰일 났다며 걱정을 했다. 그날 나는 정부부처 확진자와 2~30센티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고 업무협의를 했다.
 코로나 증상은 업무협의를 한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심한 설사와 구토였다. 그런 사실을 직원 몇몇이 알고 있었다. 업무 협의한 정부부처 직원이 확진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직원들이 인터넷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상을 조회했는데, 내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그때부터 직원들에게 의심할 여지 없는 확진자가 되었다.
 그날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나뿐만 아니었다. 정부부처 업무협의에 참석한 직원들 모두 받았다. 모두 회의일로부터 14일 경과일까지 자가격리하도록 했다. 그래서 그날 참석한 정부부처 및 공단 직원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내가 근무하는 공단본부 건물 전체를 긴급 방역했다.
 확진자가 된 소문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공단 상황실은 밀접접촉자 B차장이 자가격리 사실을 직원들에게 공지하였는데, 장애인지원실에 근무하는 B차장이 확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가까운 직원 몇 명에게 전화가 왔다. B차장이 누구인지 묻는 전화였다. 웃으면서 B차장이 나라고 하자 전화한 직원 모두 비상이 걸렸다. 그들은 지난주 나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던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공단 1호 확진자. 정부부처 직원이 확진되었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그 단어가 뇌리에 떠돌았다. 나로 인해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공단 1호 확진자라는 꼬리표와 나로 인해 공단본부가 폐쇄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까지 몰려왔다.
 토요일 일찍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마치고 가족과의 접촉을 피해 안방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했고, 밀려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혹시 하는 생각에 가족과 보낸 시간, 직원들과 같이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족과 만나고 전주로 돌아오는 주말은 찰나처럼 빠르게 지나갔는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주말은 너무나 길었다.
 내가 확진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공단본부 직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내가 이번 주말 통근버스를 타는지 문의도 있었고, 일부 직원들은 우리실 직원들을 기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말부부 직원들은 집 도착 전에 연락을 받고 다시 전주로 복귀하기도 했고,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한 직원도 많았다고 한다.
 악몽으로 이틀을 보냈다. 방송에서는 결과가 6시간이면 나온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확진자라 연락이 늦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자꾸 덮쳐왔다. 정말 내가 확진자가 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에 두려웠다.
 일요일 오전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가 보건소 같았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검사 결과가 음성입니다. 걱정 많이 하셨죠. 라며 내게 결과를 안내해 주었다. 나는 보건소 직원에게 수차례 고맙다고 말하고 고개까지 몇 차례나 숙였다. 전화기를 들고 절을 하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국민연금공단 코로나19 바이러스 1호 확진자? 그렇게 코로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인연인지 나는 확진자가 수용된 안산생활치료센터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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