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록 전라북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

'시 삼백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하는데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詩 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논어의 위정 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삼경의 하나인 시경은 311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목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305 편인데, 일반적으로 시경에는 시가 삼백편이 있다고 한다. 중국고전에서 시경은 문학과 예술, 서경은 정치, 주역은 종교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자는 문학과 예술을 한마디로 사무사(思無邪)라고 단순하게 정리하였다. 정말 공자님다운 발상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관이 단순화시키는 것인데 이렇게 쉽게 하면서 이렇게 명확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성인의 능력이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배운 이 한마디는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고, 지금까지의 내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思無邪’라는 한마디는 어느새 사람을 만나는 원칙이 되었고, 예술가들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예술작품을 보는 눈이 되었다.
 

모든 사물은 판단하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는 않다. 아무리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하여도 그것은 현실에서 무참하게 깨어지고, 새로운 편견을 만들고, 색안경을 쓰게 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현장에서 같이 생활하는 기획자,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사회처럼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판단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아주 쉽게 이단이나 음모론이나 똘아이로 낙인찍는 사회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창작현장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분쟁의 소지가 많다. 절대 민주화되기 힘든 곳이 예술창작현장이다. 예술가가 아무리 이런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창작근거를 이야기하지만 평론가들은 자신만의 자(尺)를 만들어가지고 작품을 찢어서 분해하고 그에 대해 수긍하지 못하는 창작자들은 반론과 본질을 넘어서는 헐뜯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또한 평론가들의 애정 어린 표현을 애둘러 ‘지가 창작을 알아’하고 무시하는 창작자들의 태도도 마음속에는 나쁜 생각(邪)이 있다. 

그런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기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만 쓰고,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만 원수(?)갚고, 자기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줄 사람에게 조아리고, 나에게 줄 술 놈에게만 배려하는 모습을 본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패거리 의식 속에서 지역과, 학연과, 혈연을 따지는 우리의 본능적인 생활습관에서 나쁜 생각을 의도적으로라도 없애야 하는 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그런 자세를 욕하면서 예술가들은 그런 나쁜 습관과 나쁜 생각을 반복해서 무의식적으로 현실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나쁜 예의 사용설명서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년간 전라북도의 시간을 돌아보면 결국 나의 투쟁은 ‘사무사(思無邪)와의 싸움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감사한 전라북도립국악원과 함께 했던 시간을 되돌려보면 ‘나는 나쁜 생각이 없었는가?’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내가 한 말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성은 늦었지만 하는 것이 좋다고는 해도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혹시라도 제 말에 상처받으신 분들에게는 이렇게나마 지면을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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