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국민연금공단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개를 반려하고 싶었다. 고양이도 관심은 있었지만 한 번도 반려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내 기억 속의 고양이는 어린 시절 연탄보일러 속의 쥐를 잡는 용도였고 끈에 묶여 뒹굴뒹굴 거리다가 어린 내가 지나갈 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할퀴는 무서운 녀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평소와 다름없던 퇴근길이었다. 햇살이 참 따뜻했다. 좀 더 걷고 싶어 평소와 다른 길로 갔는데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길에서는 보기 힘든 회색빛 예쁜 러시안블루였다. 당시 러시안블루는 귀했기에 가출했거나 유기되었음이 분명했다. 내가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올까말까 여러 차례 고민하는 듯 보였다. 고양이가 다가오지 않아 돌아서려는 순간 고양이는 “냐앙~” 거리며 내 품에 안겨들었다. 반려인들 사이에서 이런 경우를 간택이라고 한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고양이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진료 받는 내내 고양이는 처음 보는 내가 오랫동안 함께한 주인인 듯 품에 안겨들었다. 다른 곳에 입양을 보내려했으나 그 애교에 녹아 보내지 못하고 그 아이는 나의 반려묘가 되어 10여년을 함께 살게 되었다. 나의 반려묘는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했고 또 다른 세상을 알려주었다.
 고양이는 봄과 같은 동물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햇살 아래 일광욕하는 고양이를 슬며시 안고 냄새를 맡으면 따뜻하고 고소한 햇살 냄새가 난다. 머리를 쓰다듬고 뱃살을 주무르고 부드러운 발바닥을 만지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 작고 따뜻한 가슴에 귀를 대면 콩닥콩닥 뛰는 힘찬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안락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을 그린 그림이 많나보다.
 고양이는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도도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정보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개와 다를 뿐 반려인에 대한 고양이의 사랑은 지독하다. 자신의 머리, 발, 꼬리 등 한 부위는 반려인의 신체에 닿아있어야 만족한다. 반려인의 곁을 항상 맴돌거나 혹은 멀리서 CCTV처럼 지켜본다. 또한 반려인의 관심을 받고자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보고 있으면 모른 척 그 위에 앉아버린다. 한편 화장실 문 앞에서는 반려인이 물에 빠졌을까봐 ‘냐앙 냐앙’ 소리 높여 불러 일에 집중하기 힘들 때도 있다. 질투심도 심해서 다른 고양이를 예뻐하면 쓱 다가와 손길을 뺏기도 한다.
 고양이는 참 똑똑한 동물이다. 출근할 때 배웅하고 퇴근하면 마중하는 고양이라니! 가족의 말에 의하면 퇴근 30분 전부터 문 앞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고 한다. 그런 행동을 보면 고양이가 시계를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앞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앞발의 귀재이다. 가끔 스스로 간식을 챙겨먹기도 하고, 열어본 적 없는 서랍을 열고 들어가서 자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덕분에 고양이가 열수 없는 서랍은 필수품이 되었고, 우리 집에 숨은 공간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난감을 던져주면 물고 오거나, 장난감을 물고 와서 놀아달라고도 하며, 좋아하는 장난감을 곁에 두고 자기도 한다. 사람의 말도 제법 알아듣는다. 다만 자신의 기분이 내킬 때만 응해준다.
 고양이는 참 바보같은 동물이다. 가끔 바보같은 행동을 하여 반려인을 즐겁게 한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가 숨바꼭질인데 고양이는 자신의 머리만 숨기면 안 보이는 줄 안다. 그 경우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찾으면 살금살금 기어오는데, 적당히 놀라는 척 해주면 매우 즐거워한다. 만약 아는 척을 하면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는데 유연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낯선 고양이가 아는 척을 한다면, 그 고양이는 자신의 봄을 나눌 반려인을 간택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겸허히 받아들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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