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구 전라북도의회 농산업경제위원장

기적을 바랬고, 마음을 애태웠으며 자신이 믿는 신께 자비를 빌었고 함께 울었던 ‘2014년 4월 16일’ 아름다운 304명의 우리의 아들이자 딸 그리고 정다운 이웃을 허망하게 하늘로 떠나보낸 날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어찌 그날의 그 안타까움과 슬픔을 잊을 수 있겠는가?
뜨거운 심장과 기억이 멈추지 않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 켠에 나무의 옹이처럼 세월호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직 못다 핀 어린 학생들이 수장되는 장면을 여러 매체를 통해 실시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힘으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과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정부에 대한 분노, 그런 정부의 무능함을 막지 못했던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세월호에서 단 한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애태우며 희망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딸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 비보로 아버지와의 인터뷰가 취소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어떤 곳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던 아나운서마저도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그날의 뉴스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날을 기억하고 아파했으며 함께했던 6번째의 봄을 맞았다. 지난 6년은 세월호 가족들에게는 치열했으며 고통스럽게 한국사회를 관통해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식의 죽음의 진실을 위해 무릎을 꿇던 부모님들을 외면하던 당시 정부인사들, 진실 규명을 위해 가족의 단식 앞에서 피자를 먹던 사람들, 무책임하게 진실을 덮으려 했던 관계자들,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7시간 후 잘 정돈된 모습으로 나타났던 당시의 대통령, 그들 모두는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며 우리와 미래세대는 그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할 것이다.
흔히들 이생에는 이생의 질서가 있어 사람들은 그 순리에 맞추어 생을 마친다고 하지만 신들이 말하는 인간의 삶의 시간인 그 찰나의 순간도 채 살지 못한 그 꽃 같은 아이들의 순리가 그날이었을까? 그 순리를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 이상의 무책임함을 용납할 수 없었던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그로 인해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탄핵을 통해 파면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어떤 유혈사태도 없이 민주주의라는 제도 안에서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만든 것이다. 이제는 코로나19를 대처하는 한국을 전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2020년 4월 15일 우리의 한 표가 커다란 나비효과가 되어 얼마나 큰 가치와 파생효과를 만들 수 있는지 신중하고 소중한 한 표로 행사해주기를 바래본다.
어느 노래의 가사인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구절처럼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미안했다고... 또 우리가 꿈꾸던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었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환생이 있다면 억겁의 시간이 지나서라도 그들의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부디 더 좋은 곳에서 사랑받는 아들과 딸로 태어났기를 온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올해 봄에도 수많은 노란 리본은 304개의 바람에 의해 엄마의 영혼과 아빠의 심장, 가족들의 숨결, 한국인들의 마음이 머무는 그곳 팽목항에서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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