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협동조합 역사는 유럽의 협동조합 역사에 비하면 이제 태동기를 지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은 짧은 역사 속에서도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70년 전, 참혹한 한국전쟁 가운데 60%가 넘는 고금리를 요구하던 사채업자들로부터 고난을 겪던 서민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이라고 생각한 파란 눈의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는 같은 뜻을 가진 신도들의 손을 잡고 협동조합을 꾸렸다. 그것이 지금의 신용협동조합의 씨앗이 됐다.
가브리엘라 수녀가 뿌린 씨앗은 이제 세계 신협규모 1위라는 꽃을 한국에 피워냈다. 그리고 전북의 71개 조합 역시 낮은 곳에서 서민들에게 든든한 금융 울타리 역할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올해는 '자주·자립·협동' 신협이 한국에 태동한지 60년이 되는 해다. 이에따라 본보는 전북에 자리한 신협 조합을 찾아 그간 걸어온 60년과, 앞으로 걸어갈 100년의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전주중산신협은 전북은 물론이고 전국의 모든 신협지점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50여 년의 깊이있는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평균 나이 34세의 젊은 직원들의 역동적인 영업방식과 창구 앞에서부터 창구를 떠날 때 까지 조합원을 진심으로 대하는 친절 마인드는 이 곳의 트레이드 마크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면서 신협의 창립이념의 큰 줄기인 사회적운동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타 조합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해엔 전북내 조합 종합경영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는데 중산신협에게 경영평가점수의 고저는 지역상생과 조합원 섬김보다 위에 있지 않음을 태도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결과는 창구 활성화로 꽃폈다.
지역민의 삶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중산신협은 1969년 창립자 32명과 자본금 10,200원을 바탕으로 임의조합으로 태동을 알렸다.
그 후 1972년 12월 재무부의 설립인가를 받아 전주중산신협이 창립됐다. 전주중산교회의 신상진 목사와 교인들의 쌈짓돈은 중산신협의 설립의 밑거름이 됐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이웃 사랑이 지역의 든든한 금융자산이 된 셈이다.
지금은 10년 연속 경영평가에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번갈아가며 전북 최상위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는 중산신협이지만 처음부터 영광이 자리한 건 아니었단다.
'금융기관들의 무덤'이라 불렸던 1997년 IMF 여파는 중산신협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영악화 자체도 문제였지만 대출 과다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재무상태 관리조합'으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10년 전엔 미국발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든 시기를 거치기도 했다. 시련 앞에서 중산신협이 택한 선택은 돌고 돌아 '사람'으로 귀결됐다.
이 무렵 전무로 승진한 전호진 전무는 조직원들부터 금융지식으로 중무장하고 친절한 태도를 견지하면 조합원들 역시 진심을 알고 찾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경영실적은 조직원을 옭아매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에서 나온다는 점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산신협은 타 조합과는 다르게 신입행원을 뽑을 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자체적인 평가를 위해 서류접수 이후 직접 만든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임원 면접을 거친다. 여기까진 다른 회사와 비슷하지만 최종 관문은 모든 직원들 앞에서 PPT자료를 만들어서 발표까지 무사히 해내야 한다.
이같이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고 들어온 직원들의 사명감이 여타 조합과는 다를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입사 후에도 베테랑 선배와의 2달간의 OJT(직무수행과 병행하는 교육훈련)를 거치면 완성형 신입행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완벽한 트레이닝을 통해 자리를 얻은 행원들의 대민서비스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한 사람의 '리더쉽' 보다 모두의 '리드쉽'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는 중산신협은 조직원들의 자긍심을 스스로 다져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고 그 안에서 창의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뿜어내면서 영업에 임하다보니 경영실적의 우상향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실제로 2015년 1,170억 원이었던 자산은 2016년 1,280억 원, 2017년 1,330억 원, 2018년 1,450억 원, 2019년 1,850억 원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해왔다. 당기순이익 역시 기부와 사회공헌활동 등의 지출을 수반하면서도 전북 71개 조합 가운데 3~4위를 시현하고 있을만큼 탄탄한 경영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중산신협의 성장지표는 조합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조합원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려는 직원들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여서 만든 성장기록에 가깝다.
직장을 다녀 평일에 은행업무를 보기 어려운 조합원들을 위해 매주 목요일 저녁 7시까지 야간창구를 운영하는 일 부터,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신협의 특성상 보다 친절하고 섬세한 금융상담을 통해 조합원들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일까지 직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철저한 인재육성 시스템을 통해 중산신협의 성장에 기꺼이 밀알이 되어주는 직원들은 금융지식, 실무능력, 서비스마인드까지 3박자를 조화롭게 갖추고서야 창구 앞에 설 자격을 얻는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오늘도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2011년 중산신협에 입사해 10년차 베테랑 행원으로 거듭난 홍성권 대리는 직원들 모두 공동의 목표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이 중산신협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밝히며 조합을 찾는 모든 조합원들에게 가족같은 신협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여신을 담당하는 최재중 팀장 역시 6명의 여신담당 직원들이 '원팀'의 마음으로 건설현장의 모래먼지를 뒤집어 쓰는 등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대출을 성사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만큼 다른 은행보다 한 발 더 앞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유학봉 중산신협 이사장은 "젊은 직원들의 노력과, 꾸준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조합원들의 관심으로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며 "숱한 어려움을 딛고 끝끝내 일어났던만큼 앞으로도 성장을 사회에 환원하는 중산신협이 되도록 모든 임직원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신협다운 신협'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쓴 전주중산신협이 영광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면서 지역민과 오랫동안 동행해 갈 수 있길 바라본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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