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윤 전라북도의회 문화건설안전위원장
 
지난 3월 11일은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의 9번째 기일이었다. 정기용 선생(1945~2011)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옥을 설계한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의 39년 건축인생의 전체 작업 중 절반 이상이 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그가 무주에 설계한 수십 건의 작업들은 대부분이 무주군이 발주한 공공 건축물 또는 시설물이다.
그의 무주공공프로젝트들은 사실 조금 특이하다. 안성면의 면사무소 설계 때는 면사무소와 함께 공중목욕탕을 만들었다. 공중목욕탕이 없어 주민들이 승합차를 빌려 도시의 목욕탕까지 나가야 했던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주공설운동장 리모델링때도 주민이 먼저였다. 원래 본부석에만 지붕이 있고 관람석에는 지붕이 없어 군민행사에 정작 있어야 할 주민들은 없고 동원된 공무원들만 있던 장소였다. 건축가는 기존에 있던 등나무를 이용해 관람석에 등나무지붕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땡볕에 앉아 있느라 고생하는 대신 등나무 그늘 아래서 편안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등나무운동장은 지금까지도 무주반딧불축제, 무주산골영화제 등 각종 행사의 주요공간으로 군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사랑받는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또한 밤이면 무수한 별들로 가득한 부남면의 면사무소를 설계할 때는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천문대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고 싶을때 부남면 면사무소 천문대로 간다.
필자는 이 같은 정기용 선생의 건축작업들을 보며 지역주민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건축가는 ‘내가 한 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설계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원하고 필요한 건축물이 무엇인지 묻고 듣는 일이라고 한다. 콧대 높은 서울대 출신 프랑스 유학파 건축가의 행보치고는 다소 예상을 빗나간다. 결국 이렇게 설계된 건물들은 지금까지도 주민들이 ‘잘 쓰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정치인도 건축가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듣는 것은 사실 말은 쉽지만 이 과정을 제대로 하고 있고, 이를 의정활동과 정책, 법제도로 잘 구현해내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결국 결정의 순간에는 소수의 기득권 세력이나 개인의 치적이 늘 주민의 목소리보다 앞선 경우가 보편적이다.
또 하나 정기용 선생의 건축설계에 있어 독특한 부분이 있다. 바로 생각보다 멋있는 건축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명 건축가의 설계 작품이라는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건축물을 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실망부터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건축물을 설계하며 ‘누가 만든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멋있는 신념을 말한다.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가 설계한 공공건축물들은 겉멋이 전혀 없다. 누가 설계했는지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주민들의 요구가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지다 보니 평범하지 않은 내외부공간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업적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보다 누가 한 것인지가 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몸과 마음은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선거를 앞둔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 지역의 후보와 정당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유권자인 우리의 몫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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