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욱 국민연금공단
 
 
평소 엉뚱한 질문을 잘하는 막내가 별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이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했는데, 본인 허락을 받지 않고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지가 이유라고 한다. 아들은 내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런 소송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자라서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해 준 걸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인도 뭄바이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부모가 모두 변호사이인데, 자신들의 승소를 장담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법이나 소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왠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부모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나 역시 보이지 않는 탯줄이 연결된 것처럼 끊임없이 힘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부모님에게 잔소리 듣지 않으며 자랐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팽개치고 작은 일탈을 하기도 했고 술이 청춘의 상징인 냥 마셔댔지만, 부모님은 나를 믿고 기다려주셨다. 언젠가는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끝없는 믿음이며 사랑이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내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가 부모가 되고 가장이 되어보니 삶은 녹록치 않고 어깨는 무거워진다. 그래서인지 가끔 부모님의 양육방식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좁은 아량으로는 큰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아버지는 박봉인 교사 월급으로 어떻게 6남매를 대학교까지 키우셨는지, 아들이 말썽을 부려도 손찌검 한번 하지 않았는지, 술만 드시면 고래고래 소리를 왜 질렀는지 어릴 적 품었던 질문을 하고 싶어도 이젠 곁에 아버지가 없다.
 두툼한 손으로 이끌어주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늘 상냥하셨던 어머니도 요즘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지고 기력도 많이 약해지셨다. 이젠 나와 아내가 부모님처럼 온기어린 손과 마음으로 가족을 감싸 안아야 한다.
 애들이 예의 없는 행동을 하거나 버릇없는 언행을 할 때면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학교 선생님의 갑작스런 호출로 면담을 할 때도 애가 왜 그랬는지 먼저 이유를 듣기도 한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윽박지르기보다는 차분히 왜 그러는지 대화를 나눠야하며 공부를 힘들어 할 때는 적절한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살아보니 부모 역할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무한한 신뢰가 방임이 되기도 하고 지나친 관심은 간섭이 되기도 하여 헷갈린다.
 아내가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 창업을 알아보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있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딛고 개업을 하고 손님을 받느라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었다. 모처럼 가족이 모여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라면 얘기가 나왔다. 큰아이가 요즘 학원이 늦게 끝나 저녁으로 라면을 자주 먹는다는 말을 하자,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본인의 몸과 마음도 지치고 피곤했을 텐데. 아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못 챙겨줘서 안쓰러웠나보다.
 늦어도 꼭 밥 챙겨 먹으라는 아내의 말에 아들이 방긋 웃으며 걱정 말라고 대답을 한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도 나름대로 성장을 하는 것 같다. 엄마 생신이라고 안하던 집안 청소와 설거지도 해놓고 장문의 편지도 선물로 줬다. 이래서 죄송하고 저래서 죄송하지만 엄마, 아빠 바쁘시니까 동생도 잘 챙기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써 놓았다.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우리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잘해보라는 조언이 때론 가시 돋친 말로 변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뀔 때도 있지만 노력하는 진심은 언젠가 통하리라 믿는다.
 삶은 행복할 때도 있고 불쑥 불행이 찾아오기도 하고 간혹 시련도 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그 따스함을 고스란히 애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오늘 저녁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상에 둘러앉아 애들에게 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줘야겠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