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 전북농업기술원장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46억년 전에 생성되었고, 흙은 5억년 전에 생겼으며, 인류의 농경생활은 약 1만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과학적 추측은 흙 속 화석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들이다. 최초 도시국가 생성과 멸망 원인도 흙에 있었고, 현재 물질문명도 흙속에서 나왔다.
세계 4대 문명 중에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흙을 보존하지 못해서 멸망한 도시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에 분포하고 있는 삼각주의 비옥한 흙에서 시작된 농경 문명은 인구 증가를 불러왔고, 더 많은 식량 생산에 필요한 농경지를 확대하려고 관개수로를 만들었다. 국가적 위상과 지배자 욕망은 건축물을 만들 벽돌을 굽기 위해 흙을 파헤쳤고 숲의 나무를 베어냈다. 도시국가로 번성하면서 자연을 파괴한 결과 흙이 침식되어 농경지로 유입되는 강의 수로를 메우게 되고, 비옥한 땅은 점차 사막화되어 농업이 파괴되면서 멸망한 역사 기록을 흙 속에 남겨두고 사라졌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흙과 공생하고 경쟁하면서 치열한 생존과 멸망의 역사를 흙에 남겨두게 된다. 따라서 흙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비가 오면 하천을 누렇게 만드는 흙탕물의 경제적인 가치를 26조원으로 평가하였다. 흙의 표토가 갖고 있는 오염물질정화, 수자원저장, 자원과 골재 저장, 이산화탄소 저감 기능 등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또한 지표면에서 30 cm 깊이까지는 유기물과 미생물이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어 식물생장에 필요한 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귀중한 자원인 흙 1 cm가 만들어지는데 200여년이 소요된다고 하니, 30 cm가 만들어 질려면 약 6,000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야 하므로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온난화나 사막화, 열대우림의 감소,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주는 황사와 미세먼지 등 모든 것이 흙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중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꽉 막혀 흙이 보이지 않는 지면, 모래 없는 놀이터, 깨끗하게 씻겨 진열된 채소를 보면 흙과 생명의 연결 고리를 찾기 힘들어졌다. 흙이 위기에 처해 있다.
논 1,000 m2(300평)에서 500 kg 정도 쌀을 수확하고, 동시에 600 kg 정도 볏짚이 생산된다. 논은 우리에게 쌀을 주었는데, 우리는 볏짚을 토양에 환원시켜주지 않고 비닐사일리지로 만들어 가축먹이로 사용하고 있다. 볏짚 속에는 유기물 174 kg, 요소 9.3 kg, 용성인비 28.5 kg, 염화칼리 34 kg, 규산질비료 252 kg 등이 들어 있다. 우리를 위해 수고한 흙으로부터 부산물인 볏짚마저 빼앗아 버리고, 그 자리를 화학비료와 유박비료가 대신하면서 흙의 비옥도가 점점 떨어져 빈약하게 되어 미네랄이 부족한 흰쌀밥을 먹게 되고, 물꼬를 통해 유출된 질소와 인은 수계환경을 오염시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흙은 중요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흙에서 살 곳을 얻고 필요한 양분을 얻는다. 농업인들이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흙이라고 말하면서 관리를 잘못하여 흙을 비만하게 만들거나 물리적인 특성을 불량하게 만들어, 이를 개선하는데 금전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
전라북도농업기술원은 농업환경자원인 흙을 보존하고 잘 가꾸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흙의 비옥도를 유지하고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친화적인 농법을 개발하고, 작물에 적합한 유기물과 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자원순환농업 체계를 연구하고, 만경-동진강 유역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 새만금호 수질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농업현장 가까이에 있는 시군농업기술센터에서는 화학비료 사용량을 줄이고, 고품질의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불철주야 영농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즉, 농경지 흙을 검정하여 농작물에 적합한 비료사용처방을 하여 토양 양분 불균형을 개선하도록 하고, 농업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PLS(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에 적합한 농약사용을 지도하고 있다.
 
금년에는 코로나19가 창궐하여 3월11일 흙의날 기념행사가 취소되어 흙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흙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흙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고, 흙을 파괴하면 나라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제부터 이 땅에서 우리 후손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더 이상 흙을 아프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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