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선 전주대 영미언어문화학과 교수
황금돼지의 해라며 떠들썩했던 기해년은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흰쥐의 해 경자년이 새로운 소망과 함께 힘차게 출발하였다. 쥐는 부지런한 자질과 먹을 것을 모아두는 습성으로 재산과 재물 그리고 집안의 가세를 일으키는 띠라고 일컬어왔다. 경자년에는 대한민국이 국격에 맞게 거듭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소속기관인 국립국어원은 지난 1월 15일부터 22일까지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몇몇 외래어의 대체어를 정하고 이를 발표하였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슬로푸드’의 대체어로‘정성 음식’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즉석음식)’에 상대해 이르는 말이다.
나는 슬로프드점보다는 패스트프드점을 즐겨 애용한다.  몇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미국유학시절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별도의 팁을 주어야하는 정식레스토랑보다는 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페스트푸드점을 주로 이용하였는데 이로 인해 패스트푸드점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항상 다른 사람과 함께하여야만 하는 일반음식점보다는 혼자 식사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비 혹은 눈이 내리는 날,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총총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출·퇴근하는 차량을 바라보며 햄버거를 먹거나 커피 한잔을 마시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거나 묵상에 잠겨있는 시간은 최상의 행복을 느끼는 나만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때마다 항상 겪는 불편한 점 한 가지가 있다. 한국에서의 패스트푸드점만의 특이한 점 때문이다. 미국의 패스트프드점은 고객이 냅킨이나 케첩을 필요한 만큼 마음껏 이용하도록 매장에 비치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은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에 한 개의 케첩과 2~3장의 냅킨만 준다, 케첩을 좋아하는 나는 항상 종업원의 눈치를 보며 미안한 듯이 몇 개를 더 달라고 해야만 한다.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라기 보다는 왠지 종업원의 눈치를 보며 애틋한 부탁이나 하듯이 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일이 지난 해 11월 신문에서 기사화 된 적이 있다. 코스트코코리아가 전국 매장 푸드코트에 비치됐던 무제한 리필 양파 기계를 없애는 대신 핫도그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한해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소량의 양파만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유는 접시에 양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반도 못 먹고 버리거나, 양파를 밀폐 용기에 담아가거나, 심지어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사지 않은 사람들이 쿠킹호일에 양파를 담아 싸가기 때문에 부득이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 기사의 제목은 더 충격적이다. ‘양파거지’ 때문에 코스트코, 공짜 양파 없앴다.
이러한 글로벌기업에 대한 한국내 매장의 차별화된 정책은 한국인에 대한 차별인가 아니면 글로벌시민으로서 한국인의 공짜에 대한 의식의 문제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한국내의 남·녀 목욕탕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목욕탕의 경우 여성목욕탕은 수건을 하나씩 만 주며 사용 후 반납하도록 한다. 반면 남성목욕탕은 수건을 수북이 쌓아 놓고 사용자가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번은 목욕탕 주인에게 이처럼 차별하는 이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남성의 경우 보통 1장 내지 2장의 수건을 이용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4-5장의 수건을 사용할 뿐 만아니라 심지어 수건을 몰래 가져가는 경우도 있어 부득이 차별화할 수 밖에 없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특수한 예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글로벌기업의 한국내의 차별화된 정책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글로벌시민으로서 공짜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2019년 세계은행(WB)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GDP는 1조6천194억달러로 전 세계 205개국 중 12위를 차지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종합 순위는 141개국 가운데 13위였다. 한국의 2018년도 거시경제 지표는 사상 최대치인 수출 6,000억 달러, 1인당 GNP 3만 달러를 달성, 세계 7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싱크탱크 외교연구소인‘헨리 잭슨 소사이어티’가 발표한 지정학적 역량의 국가별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1위를 차지했다. 한국 국가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열 번째로 순위가 높다. 우리의 언어인 한국어의 언어력은 세계 11위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이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한다는 지표들이다.
이러한 지표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시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짜에 대한 잘못된 국민의식 때문에 글로벌기업으로부터 국격에 걸 맞는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국민의 의식이 그 나라의 국격이며 국격을 높이는 것이 국민의 품격이며 국민의 품격에 따라 글로벌시민으로 적합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항상 논란이 되고 있는 교통사고 사망률 1위, 10만 명당 자살률 1위, 이혼률 1위의 불명예스러운 지표 또한 바뀌어야 한다.
경자년 새해에는 글로벌시민으로서 품격을 지녀 국격에 맞는 대우를 받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길 소망해본다. 그리하여 패스트푸드점에서 종업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케첩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경자년 새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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