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희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지원실 

일하는 중간 잠시 숨 돌릴 때,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있다. 책상위에 자리한 빨간 자동차이다.
 모니터와 비슷한 높이에 있어 고개만 돌리면 보인다. 자동차 모형 옆으로 창밖의 풍경도 함께 담긴다. 어떨 때보면 ‘나 좀 자주 봐 주세요’라고 말을걸어오는 생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포츠카 미니 모형이 다른 사람에게는 장식용으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자동차다. 모형자동차는 3년 전 아이에게 선물로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아이는 마트에서 빨간색 조립식 모형자동차를 손에 쥐었다. 빨간색을 고른 것은 엄마가 좋아하는 색깔이란 이유란다. 아이는 집으로 오자마자 자기방으로 들어가서는 얼마간 뚝딱뚝딱 하는가 싶더니, 조립을 끝내고 네임펜으로튜닝까지 마쳤다.
 “엄마! 사무실에 갖다 두세요.” 미소 짓던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신이 손수 만든 모형 자동차를 사무실에 두라고 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워킹맘이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함께하는 워킹맘이라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회사를 그만두라고 보채는 날이 많았다.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떼를 쓰곤 했다.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그때 왜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을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가 학원을 빼먹지 않고 다녀왔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나쁜 엄마였다.
 나는 전주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사이동으로 새해에 서울에서 전주로 왔다. 사무실에서 책상위에 두었던 빨간 자동차는 택배로 보내기 아까워 집으로 가져왔다. 아이는 빨간 자동차를 보더니 “어!?엄마 잘 간직하고 있었네요.” 라고 웃으며 반가워했다. 아이는 자동차를 가져가더니 ‘엄마! 전주 가서 열심히 하세요.’ 라고 네임펜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그때부터 아이의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자동차가 되었다. 아이가 준 빨간 자동차와 응원 메시지는 어떤 누구의 말보다도 힘이 되고 있다.
 아이는 3월이면 중학교 2학년이 된다.사춘기를 겪고 있다. 어린 시절과 달리 행동이 시시각각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끔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 내가 직장생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엄마의 직장생활까지 응원해주는 든든한 아이로 자랐으니.
 가족과 떨어져 주말마다 서울과 전주를 오가야하는 생활이 녹록치는않다. 아이 앞에서는 엄마가 꿋꿋하게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만 아이도 엄마의 걱정을 덜고 고등학교 입시를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 나들이를 할 때면 아이와 남편이 나란히 걸어가고 나는 뒤에서 따라 갈 때가 많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왠지 든든함이 생긴다.
전주로 온지 한 달도 채 안된 시간이지만 아이는 엄마를 더 그리워하는 것같다.함께 있을 때는 학원과 숙제얘기를 주로 했다면,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를 먼저 챙겨주는 엄마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중이다. 학원만 따지는 엄마가 아니라 생각을 공유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서 아이는 키도 더 자란 것 같고 더 자주 웃는 거 같다. 잔소리는 줄어들고 그리워진 순간에 나타나는 엄마가 더 좋아졌나보다. 나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귀염둥이 강아지 하니도 유난히 더 재롱을 부리는 것 같다. 아이는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걱정이 든다. 학원스케줄을 만들고 제시간에 가는지 체크하던 나쁜 엄마로 기억하는 건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오늘도 빨간 자동차를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아이의 온기가 느껴지는 자동차를 볼때마다 고단함과 아이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풀리는 것 같다. 주말이면 아이를 볼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