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어느 방송국 회의에서 지역과 지방이라는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역과 지방이 두루 쓰이는데 지방보다는 지역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지방이라는 용어는 중앙에 예속된 감이 있고, 중앙은 곧 서울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방보다는, 독립적이고 동등한 의미를 담은 지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
역사학계를 보아도 지방사보다는 지역사라는 용어가 요즘 널리 쓰이고 있는 것 같다. 근래 지역의 특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붐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지방학이라고 하지 않고 지역학이라고 한다. 이전 같으면 지방학이라고 하였을 것 같다.
지방이라고 쓰는 것이 필요하고 적절한 경우도 있다. 중앙에 대비해 지방을 이야기할 때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는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북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과 긴밀한 관계도 유지해야 하지만 전북지역 자체가 분명한 주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북지방 보다는 전북지역이라고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전북을 지방이 아니라 지역의 개념으로 의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북 발전을 위해서는 주체의식과 함께 전북지역에 대한 자존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지 전북은, 지역민들부터도 낙후한 곳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크게 보면 전통기 농업사회에서 잘살던 전북이 산업화 이행에 좌절을 겪으면서 벌어진 일일 것이다.
넓게 보면 모든 것들이 서울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서울, 경기를 비롯한 몇몇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의 지역이 이런 의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북이 상대적으로 심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는 같은 전라도에서 상대적으로 광주 전남이 커진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근대사회부터 전북과 전라도에 대한 차대 내지 소외로 보이는 것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체가 크지 않았고, 양반사족의 정치적 진출에 한정된 문제였으며,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도내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전주 말고는 전북의 모든 시군이 지역소멸론 범주에 들어가 있다.
그러다 보니 신문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전북지역 낙후 내지 차대 성격의 말들이다. 낙후가 아닌 것을 억지로 낙후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지역민들에게 주는 부정적 영향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낙후, 차대라는 용어들을 계속해서 듣게 되면, 지역에 대한 열패감이 조성될 수 있다.
전북에 대한 희망찬 말이 필요하다. 전북은 본래 낙후된 지역이 아니다. 전북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문제이지 역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전북지역을 말할 때 낙후라는 말을 가려서 써야 한다. 꼭 써야 할 때 써야 하지만, 으레 타성적으로 쓰고 있는 점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역사적으로 전라도가 정치적으로 차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그만한 정치적 무게를 전라도가 지녔다는 것이 된다. 방점을 정치적 차대가 아니라 무게에 찍으면 이야기가 이처럼 달라진다. 필자는 지난 전라도 천년 때부터 전라도를 말할 때 정치적 소외라고 하지 않고, 관점을 바꾸어 왕재를 지닌 땅이라고 말한다. 언어는 의식에 영향을 준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늘상 지역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지역인재를 키워야 한다. 지역출신 인물들을 키우고 감쌀 필요가 있다. 때로 부족하고 맘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지역민들이 따뜻하게 감싸고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북은 역사적으로 시대의 중심을 잡아온 지역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말 동학농민혁명과 의병 때, 그 어려울 때 시대적 요청에 힘껏 부응한 곳이 전북이다. 지금 좀 어렵더라도, 뚝심과 자존감을 갖고, 경자년 새해 희망차게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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