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 고백

오피니언l승인2019.12.18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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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새벽 전화를 받았다. 뜻밖에 숙경이다. 아내가 벌떡 일어나 정말 숙경이가 맞느냐고 물었다. 한때 그녀는 아내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30여 년 만에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술이 취해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분명 오래전에 기억하던 목소리였다. 보육원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내 얘기가 술안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와 관계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 내 전화번호를 눌러 그녀에게 건넨 바람에 얼떨결에 통화를 하게 된 것이다. 잠결에 받은 전화라 안부만 묻고 끊으려 했는데 갑자기 숙경이가 훌쩍거리며 고백을 한다. 나는 낯선 고백을 받았다.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보육원에서였다. 20대 후반인 나는 당시 어쭙잖은 실력으로 보육원에서 보충 수업을 해 주는 선생님이었다. 퇴근을 하고 난 뒤 수학과 국사를 가르쳤다. 야학 경험이 있어 가르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다른 어느 가정집 아이들처럼 순수했고 나를 잘 따랐다.
 
그녀는 삼남매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진폐증으로 입원하고 계셨고, 어머니도 없는 삼남매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가 사춘기가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보육원 생활에 염증을 느껴 가출을 한 것이다. 마음 고운 친구 몇 명이서 함께 살자는 말에 가출을 했다. 가출 초기에는 이럭저럭 지낼만했다. 친구 부모님들이 측은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돌보아 주었지만, 한 달쯤 지나자 갈 곳이 없게 되었다. 오빠가 나서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보육원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다. 그 소식을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녀를 지켜봤던 나로서는 매우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모른 체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때가 지금 서른이 된 큰 애가 돌이 지난 때였다.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는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허락을 했다. 당시 전셋집에 방이 두 개라 함께 생활하는데 불편은 없었다. 아내는 이십대 후반에 중학생 어머니가 된 것이다. 아내는 다른 어머니처럼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방 정리를 하고, 용돈도 챙겨주었다.  
 
그녀는 잘 적응했다.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성적도 제법 올랐다. 게다가 첫째 아이와도 잘 어울려 놀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내가 했던 학부모 노릇보다 그녀가 아이와 어울려 노는 것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아내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다. 돈이 만원씩 없어진다는 것이다. 죄 없는 사람을 의심한다며 화를 냈지만, 아내가 몇 번이나 시험했다며 틀림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당시 입사한지 2년이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라 넉넉한 생활은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내는 부족한 생활비를 가끔 장모님에게 손을 벌리기도 했다고 한다. 아내가 그녀에게 준 용돈은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린시절 용돈이 부족했다. 부족한 용돈을 아버지의 호주머니에 의존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천 원짜리 한 장씩 슬쩍한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시면 기억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십만 원권 묶음 속에서 한 장을 빼내던 날에는 영락없이 호되게 훈계를 하셨다. 그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었다.  
 
아내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른 척하기로 했다. 대신 생활비를 아껴 일주일에 만 원씩 용돈을 올려주었다. 그 뒤부터는 가계부에서 돈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그녀와 불편 없이 지내다가 몇 개월 뒤 보육원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가족과 헤어졌다. 그 후 나는 직장을 옮기면서 그녀의 기억은 앨범속의 사진 한 장 정도로만 보관하고 잊어버렸다.
 
그녀는 가계부에서 돈을 꺼내간 적이 있다며 고백을 했다. 삼십년이 지난 지금,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었다. 그녀는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숙경이의 고백에 그런 기억이 없다면서 화제를 아이들 이야기로 돌렸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기뻤다. 그녀는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말과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전화를 끊었다.  
 
반가운 새벽전화였다. 삼십년만의 고백보다 한때 가족이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아내가 잠을 설쳤다며 먼저 잠을 청했다. 지금은 새벽 3시지만 내일 지각을 해도 기분은 괜찮을 것 같다. 잠시 펼쳤던 추억의 앨범을 덮고 잠을 청했다. 깊은 잠을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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