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근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몇 달 전 인기리에 방송된 TV드라마 ‘의사 요한’을 보면 원인 모를 통증으로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고통과 그런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밤낮 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의학 드라마는 의료 현실과 많은 차이가 있고 생명을 다루는 숭고함이 자칫 돈벌이의 화려함이나 사회적인 성공을 위한 파벌 싸움에 가려지기 쉬워 정작 의사들이 보기 쉽지 않은데 필자는 이 드라마를 챙겨보며 의사로서의 소명감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다. 연명의료 치료 거부 동의서를 작성한 한 환자는 병상에서 어린 자녀와 늙은 아버지, 아내의 사랑을 깨닫고 가족을 이해하게 됐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친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건넨 말, “선생님은 우리 가족을 살리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시큰했다. 그리고 의사로 살고 있는 내가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병원에서 미세재건수술을 담당하고 있다. 미세재건수술은 절단된 손과 팔다리의 혈관을 잇고, 손상된 피부조직을 제거하고 다른 부위의 피부를 이식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모양과 기능의 회복을 위해 치료한다. 이런 환자들은 비록 생명의 사선을 넘나들지는 않지만 장애의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이다. 얼마 전 30대의 젊은 남자가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로 내원하였다. 더운 여름에 다른 병원을 들렀다 오면서 이미 절단 부위의 괴사가 진행될 정도로 시간이 지나버린 상태였지만 근육을 모두 제거하고 절단된 다리를 재접합 해주었다. 그 환자가 얻은 안도감은 물론이고 환자의 부모님, 자녀, 아내 그리고 회사동료들 모두 그를 병문안 할 수 있게 되었고 환자는 웃음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필자의 치료가 다리 하나가 아닌 그의 마음을, 가족을, 동료들을 살린 것이었다. 물론 그와 같은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아 수술현미경을 사용한 몇 시간의 수술과 두세 달여의 회복 과정을 거치며 최선을 다해 치료해서 발을 살렸지만 불편하다는 이유, 보상금이 적다는 이유로 재차 절단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환자도 아마 나중에는 느낄 것이다 내 몸이 완전하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겨울이 오면 눈 위에 발자국을 새기면서 이유 없이 웃을 수 있고, 행복해할 수 있는 소확행의 의미를.
아픈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연을 맺고 있는 가족 모두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해본다./전북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이영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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