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미 국민연금공단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은 장사를 시작했다. 동생 셋을 돌보는 일은 내 몫이었다. 당시 동생의 나이는 9살, 7살, 6살이었다. 고만고만한 어린 아이가 넷이나 있는 집은 그야말로 쓰레기통이나 다름이 없었다. 동생들의 손을 스치면 뭐 하나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었다. 옷도 여기저기, 책도 여기저기... 처음에는 불편하고 화가 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집이 좀 지저분한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손톱깎이를 찾으려면 온 서랍을 뒤져야 했다. 온 가족이 물건 정리에 소질도 없었거니와 그때의 환경을 개선할 만한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부모님은 자식 넷 공부시키느라 종일 장사 일에 매달렸고, 큰 딸인 나도 사춘기를 겪으며 친구관계나 신경 썼지 집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리고 정리해 봐야 다음 날이면 제자리이니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집도 다 그렇게 살겠거니 하고 집안정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혼하면 꼭 물건을 제자리에 특히, 손톱깎이나 면봉, 귀이개 같은 것들은 찾기 쉽게 놔둬야지. 드라이버 하나 찾느라 온 집안을 뒤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야지.” 하고 혼자 다짐을 했다. 직장 초년생 시절에 ‘내 살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여동생과 복작복작하던 방을 쓰던 나에게 단칸방인 자취방은 궁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기쁨도 잠시, 단칸방에는 옷과 신발과 가방이 넘쳐났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생긴 물욕은 온 방안을 가득 채웠다. 내 눈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2~3년을 안 입는 옷도 언젠가는 유행이 돌아오겠거니 믿고 옷장 깊이 쟁여두었고, 신발도 색깔별로 있어야 어떤 옷에든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나의 방이 아닌 물건의 집에 빌붙어 사는 신세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조금은 깔끔해졌다. 물건은 제자리에 두기는 하였지만 옷과 신발, 가방을 줄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처음 본 것은 외국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이다. 제목처럼 주인공은 필요 없는 물건을 하나 둘 버리다보니 나중에는 집에 아무것도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미니멀리즘은 물건을 관리하고 청소하는데 쓰는 시간과 노력 대신 꼭 필요한 물건만 관리하여,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접하면서 내가 얼마나 물건에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에 관계된 책과 블로그를 접한 뒤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먼저 옷과 신발을 정리하고, 집안 살림도 꼭 필요한 것만 두었다. 지나친 장식보다는 단순하고 청소하기 편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습관도 생겼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세일 상품이나 사은품에 목메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100%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싸니까 행사니까 하며 샀던 물건들이 많았다. 그런 물건들은 자리만 차지하다 버리게 되거나 몇 년째 보관만 하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나는 이제 그렇게 물건을 소비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도 여러 번 심사숙고하여 조금 가격이 나가더라도 제대로 된 물건, 내 마음에 120% 이상 확신이 드는 물건을 사려 애쓴다. 그런 물건을 사서 사용하면, 쓸 때 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렇게 산 물건은 오래되어도 애정이 식지 않는다. 또한 관리할 물건이 적으니 청소도 쉽고 늘 집이 청결하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만 가지려 노력하다 보니 보는 눈도 생겼다. 무심코 버리게 되는 쓰레기나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와 비닐을 버릴 때면 우리 아이들이 살 이 땅에 죄를 짓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종이컵, 플라스틱,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는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장바구니를 사용하여 비닐 사용량을 줄였다. 시장에서도 이왕이면 친환경 제품을 사려하고, 친환경 기업을 찾아 물건을 구매하고자 노력했다. 미니멀리즘은 이렇게 조금씩 나의 삶을 건강하게 바꾸어 놓았다. 하루 종일 손톱깎이를 찾고 청바지만 마흔 개가 넘던 나를 말이다.
 혹시, 물건에 치여 살고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미니멀리즘을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만 줄이는 것이 아닌 인생이 생활이 식습관이 환경이 바뀌는 마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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