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국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압박하면서 내려졌다. 정부는 이번 개도국 지위포기 결정의 효력이 미래 WTO 협상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새로운 WTO 협상이 시작돼 타결되기 전까지 기존 협상을 통해 확보한 특혜는 변동 없이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장기간 중단돼 사실상 폐기상태에 있기에,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려면 상당 기간이 걸릴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장 농업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미래협상에 대비할 시간과 여력도 충분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결정을 두고 농업계는 물론, 정치권과 학계 등이 강력 비판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자동차업계 등 일반 산업계의 이익을 위해 농업을 또 다시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결정은 실제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대상 국가를 발표하기에 앞서 내려졌다는 점에서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농업의 민간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고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 아래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정치권은 당장 대책기구 설립을 주장하며, 실효성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학계 역시 농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부의 결정을 지적하면서 서둘러 후속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대책을 미리 만들어 농업계에 제시하고 소통하는 절차적 정당성도 없이 결정을 내린 것은 크게 잘못됐다는 시각이다. 때문에 이제라도 농업정책을 고도화하고 농업예산을 늘려 농민들의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농민들의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정부가 쌀 등 민감분야 보호 및 피해보전 대책 마련, 농업경쟁력 제고대책 추진 등 기본 대책을 발표했지만, 농업계는 정부의 진정성을 크게 의심하고 있다. 정부가 대선공약에서 나온 농업정책 등으로 이번 대책을 대신하려는 모습이라며 더욱 분노하고 있다. 정부는 농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적어도 4%는 반영해야 한다는 것 등 농업계의 요구는 이미 제시된 상태다. 이번 WTO 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을 정말 철회할 수 없다면, 예산 확대와 함께 농가소득 안정 및 경쟁력 확보, 지속 가능한 농산업 유지 등을 위해 정부와 모든 부처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일반 산업계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다시 한 번 농업만을 절벽으로 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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