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그러진 우리 자화상

<● 홍선기 작가 13번째 개인전 ‘삼거리 이발소’>억제된 교육환경과 이발소 배치 등장인물 뭉쳐지고 짓눌린 모습 유신시대 정치적 의미 담아내 이병재 기자l승인2019.10.29l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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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 올해 예순이다. 1973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그림그리기 시작해 어느덧 46년이 됐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붓을 잡고 살아오면서 겪었던 과거와 현재의 일상, 내 마음 속의 응어리진 얘기를 털어 놓는 자리다.”
  홍선기 작가 13번째 개인전  ‘삼거리 이발소’가 29일부터 11월 3일까지 교동미술관 2관에서 열린다.
  동네어귀 삼거리. 동네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모퉁이에 있는 이발소, 지금은 보기도 힘든 이발소지만 70년대는 동네 모든 남자들이 애용하던 장소다.
  태극기와 대통령 사진.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이 적힌 액자가 벽에 걸려 있던 70년대 그 곳은 모든 것을 통제하던 유신 시대의 그림자중 하나다.
  홍선기는 1970년대를 ‘조급하고 통제된 시대’라고 회고한다, 그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인권은 책에서나 존재하던 단어에 불과했다. 단순히 머리카락이 길다고, 스커트가 짧다고 공권력이 인권을 무시하던 시대.
  일제 군국주의 잔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그 시절 학교는 또 하나의 병영이었다. 수업 도중 교실 앞문과 뒷문을 막아서고 두발 검사를 하던 선생님과, 수업 시간을 빼앗긴 선생님의 교권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그는 억제와 닫힌 교육환경에서 파생된 기억의 형상들을 ‘삼거리 이발소’에 배치시키고 있다.
  작품을 보면 학생이 담배 하나를 들고 서있는 뒤 칠판에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머리를 강제로 깎였지만 대놓고 반항하지 못한 ‘기억’을 기억한다.
  작가는 개인의 존재 이유가 자기실현이나 행복추구 같은 기본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국민교육헌장’에 담긴 이념을 전체주의라고 비판한다.
  작품은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담아 모호함과 불안전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일부러 거칠게 칠하고 등장인물의 동체를 물감이 뭉쳐지고 짓눌러지는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발사 앞의 고객은 얼굴이 없거나 머리가 없다. 그는 화면의 상황에 따라 얼굴을 그리지 않는다.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얼굴이란 모든 주체가 자기를 드러내는 통로다. 사람이 만나는 건 결국 얼굴이 만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변형된 토르소(torso) 형상의 인체들을 의인화하는 축적의 수단으로 표현하며 어두운 색감과 거친 붓질로 그려내는 촉각적인 회화를 선택한 것이다. 동시에 허를 찌르는 위트나 은유, 휴머니즘이 있다.”(이건용 전북대 명예교수)
  전주시 예술상(2016)과 대한민국 올해의 예술인상(2017)을 받았다. 작품 소장은 국가정보원, 전북도립미술관, 우진문화재단.
/이병재기자·kanadasa@
 


이병재 기자  kanada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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