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설 별의별협동조합 이사장
 
한때 도시개발에 있어 저층구도심 일대를 모두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활성화된 때가 있었다. 현재도 그러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제는 경제성장의 속도가 한없이 뒤처지면서 재개발 사업이 취소되거나 이도 저도 못하고 사면초가에 처한 곳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신도시가 건설되고 인구 이동이 심화되면서 구도심의 재개발사업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인구가 빠져나간 구도심의 저층주거지는 빈집이 속출하고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지역 상권이 침체되고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받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법으로 국가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내세우게 되었으며 이는 5년간 50조원이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이는 구도심의 문제 방치할 때 나타날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에서 시도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마치 잘 짜여진 영화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실은 영화를 뛰어넘는 장르인데 말이다.
 뉴딜정책에서 나온 매뉴얼은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는 시나리오 같아서 현장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틈이 없다. 또한 주민과 활동가, 관의 협업을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거버넌스란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담보되어 주체적인 사업들을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의견을 모으는 지난한 과정을 지나며 형성되는 것인데, 현재의 뉴딜사업은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간의 사업으로 명확한 결과물이 나와야하는 상황이라서 성숙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리고 사업이 공모방식이라서 지자체마다 공모에 안간힘을 쓰여 ‘일단 선정!’이 목표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또한 공모에 선정된 사업지의 관리를 위해 현장지원센터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는 마치 현장의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배정된 예산을 계획에 맞춰 사용해야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가고 있는듯 보인다. 또한 사업선정 구역과 선정되지 않은 지역의 편차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점도 뉴딜사업의 한계다.
 다시 말하자면 국토부는 돈을 쥐고 있는 영화제작사, 지자체는 영화제작사의 눈치를 보는 감독, 주민과 활동가는 사업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하는 배우, 매뉴얼은 계획상 완벽한 시나리오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얼마나 흥행할지는 미지수다.
 도시재생은 지역마다 다른 특색과 상황에 맞춰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장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과 지속적인 구동이 가능한 주체들을 더욱더 발굴하되 주민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사업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현재의 공모방식을 폐기하라. 전국의 구도심이라 할 만한 곳들은 모두 재생사업이 필요한 곳들이다. 현장의 특성에 따라 속도와 주체, 예산은 달라지겠지만 이 모든 것은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공모에 들어가는 공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고 사업대상지 한 곳에 쏟을 몇 십억에서 몇 백억에 이르는 예산을 지자체가 구역별로 배분하게 하여 생활인프라 및 공용공간, 사회복지에 이르는 다양한 서비스가 지역에 고루 퍼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영화제작사가 감독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주어야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제작사가 감독이 맡아 할 일들에 속속들이 관여한다면 과연 봉준호같은 감독이 나올 수 있었을까.
 둘째, 주택공사가 주체가 되는 다세대임대주택 공급은 더 나은 주거환경을 담보할 수 없다. 주택공사의 임대주택공급 정책이 시행될수록 특색 없는 다세대주택만 늘어날 뿐이며 이 때문에 주차문제와 쓰레기 문제 등을 안고 있는 곳들이 더욱 많아졌다. 서울처럼 수직으로 집을 지어야 시민들의 안정적인 주거가 담보될 수 있는 곳에서 필요한 방식을 굳이 지역에서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저층주거지에서 누릴 수 있는 가용공간을 보다 더 넓히고 노후된 주택을 보다 편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곳곳에 공용공간과 생활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며 교육과 복지서비스를 강화한다면 아이를 키우는 집, 결혼을 한 신혼부부, 퇴직하고 노후 준비를 하는 중년세대들의 입주가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여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사는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셋째,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고민하라.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는 일의 체계를 만들고 장기적인 효과를 고민하며 사업을 돕는 사람이다. 주민은 자신이 좀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관은 이들을 지원하는 지원군이다. 관은 활동가에게 지시하고 보고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하면 주민들과 좋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현장 상황에 맞춰 보다 더 유연하게 예산이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함께 잘 사는 세상은 양극화를 좁히고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며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지역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제도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어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모두의 도움과 지원과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사업이 바로 도시재생사업이다. 그래서 지자체별로 교육, 복지, 건축, 도시, 문화예술 등등의 다양한 팀이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다. 칸막이 행정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전문가의 계획만으로 완벽할 수 없는, 활동가의 의욕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주민들의 고민만으로 실행될 수 없는 사업이 바로 도시재생사업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실행주체이자 서로의 파트너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