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최고 명산으로 꼽히는 마이산.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특이하게도 멀리서 보면 정말 말의 귀를 꼭 닮은 두 산봉우리가 인상적으로 처음 보는 이들이라면 어떤 산보다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동쪽의 빛나는 아침의 나라 조선을 건국하고자 했던 태조 이성계는 마이산과 은수사에 머물며 조선 건국을 계획했다고 한다. 걷기 좋은 계절 가을. 숨겨진 역사를 알고 마이산의 힘찬 정기를 느껴 보기 위해 진안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마이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탑사’이다. 손수 쌓아 올린 수백기의 탑들이 인상적인 탑사는 마이산을 찾는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리는 관광명소이다.
마이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곳은 그 명성답게 언제나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오래된 고찰이 아니어도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산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실 마이산에는 탑사 말고도 여러 설화를 자랑하는 은수사가 있다. 은수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은수사는 탑사 옆 등산로를 따라 약 20여분 거리에 있다. 주변은 온통 거대한 바위산들이고 그 사이에 푹 안겨 자리를 잡은 은수사의 모습은 마치 고대사원이나 마추픽추를 보는 듯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들게 한다.
사실 은수사에 대한 정확한 과거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언제, 누가 창건하였는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사찰 또한 상원사, 정명암 등 몇 차례 중창과 퇴락을 반복하다 지금의 은수사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은수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이 거대한 한그루의 나무이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86호 청배실 나무로 이곳에 머물렀던 태조 이성계가 직접 심은 나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천연기념물 380호인 줄사철나무 군락과 조선 임금의 상징과도 같은 그림인 일월오봉도가 이성계와 관계가 있는 이곳 은수사 태극전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한편에는 거대한 북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 북은 국내 최대의 법고로서 은수사를 찾은 누구든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망을 빌고 3번 북을 칠 수 있다. 북이 워낙 커서 그런지 북을 칠 때마다 마이산이 울리는 것처럼 웅장하며 비범함을 느끼게 한다.
은수사의 무량광전은 절의 모습처럼 아담하다. 은수사 자체가 큰 절은 아니지만 마이산의 절경을 보러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부처께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여느 큰절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극락보전 뒤로 조금 올라가면 산신각이 모셔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 모셔진 산신은 명산인 마이산의 산신이시겠거니 하며 자연스레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려본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11일이면 마이산 산신께 제를 올리는 마이산신제를 거행한다고 하니 무언가 바라는 일이 있다면 시기에 맞춰 산신께 빌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산신각 앞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특이하게 앞 건물의 지붕을 덮어주며 자라고 있는 모습이 마치 비 맞지 말라고 우산을 씌어 주는 모습처럼 보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세상 모든 것이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 부처가 가르쳐 주신 깨달음을 실천하는 소나무처럼 말이다.
은수사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선인으로부터 금으로 된 자를 받았는데 얼마 뒤 마이산에서 꿈속의 장소와 똑같은 곳을 찾고는 놀랐다고 한다. 이성계는 꿈에서 본 그곳에 자리를 잡고 조선 건국의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오늘 둘러본 은수사였는데 이성계는 은수사에 머물며 이곳의 풍광이 뛰어나고 물은 은처럼 빛난다고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성계는 은수사에 머무는 동안 조선건국 의지를 굳히고 마이산 곳곳에 그 의지를 담은 흔적들을 많이 남겨있다. 대표적으로 마이산 입구에는 왕이 머물고 간 자리라는 뜻에서 암벽에 주필대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도 반한 사찰 은수사. 마이산을 간다면 꼭 한번 은수사를 들러 보면 좋을 듯하다./김대연기자·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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