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로 반일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식민정책을 우호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와 만인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책의 대표저자격인 이영훈 전 서울대교수는 일제 식민정책이 우리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대표적 주창자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사회를 보는 시각으로 우리는 흔히 “수탈과 억압”을 강조하는 식민지수탈론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소수의 주장이지만 일제 식민지배로 “개발과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책은 이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둘 다 부정하고 “개발과 수탈” 양면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성론이 있다.       
식민지수탈론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인적, 물적 수탈을 자행하였다는 것이다.  수탈론은 1960년대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내재적발전론과 연계되어 조선후기 싹튼 자본주의 맹아가 일제의 식민지배로 좌절되고 왜곡되었다고 본다. 식민지수탈론은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에 입각한 시각이다. 
식민지수탈론에 반기를 든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다. 1980년대 중반이후 경제사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주장으로, 수탈론이 일제 침략과 억압에만 매몰되어 식민지시기 개발의 측면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가 식민지 개발정책을 펼쳐 공업화와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졌고, 조선인들의 의식을 근대적으로 개혁시켜 한국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식민지근대화론은 식민지시기를 “수탈과 억압”이 아니라 “개발과 성장”에 방점을 찍고, 오늘날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일제 식민정책에 토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탈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수탈론처럼 근대주의에는 입각해 있지만, 수탈론과 달리 민족주의를 떠난 탈민족주의적인 시각이다.
이렇게 되면 식민지시기 수탈과 차별이 무시되고, 가해와 피해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따르면 식민지 근대에서 식민지는 의미가 없게 된다. 일제 식민정책으로 민족의식이 쇠퇴해지고 친일이 내재화하는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일제가 공장을 건설하고 철도를 놓은 것은 일본을 위한 것이지 조선을 위한 개발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조차 식민지시기를 미화하는 논리들이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고, 급기야는 분명한 사실조차 부정하는 책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내용이 궁금해서도 사본다고 하지만,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까 염려스럽다. 일제 식민시기의 고통과 아픔은 절대로 개발의 통계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통계수치도 분명치 않다고 한다.
식민지수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둘다 비판하면서 식민지시기를 기존과 다르게 해석한 것이 1990년대에 등장한 식민지근대성론이다. 이들은 탈민족주의와 탈근대주의 시각에 서서 식민지시기 조선사회를 '개발과 수탈'이 양립하였다고 주장한다. 개발도 있었고 수탈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적 개발 없이는 수탈이 불가하고, 억압과 수탈이 없는 식민지배는 없다는 논리이다.
이들의 주장은 수탈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단순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단선적인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 상충하고 모순되기도 하는 복수의 역사로 이루어졌다는 시각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과 독립운동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폭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하며, 이를 같이 놓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주목한 것이 식민시기 일상사이다. 일상을 통해 식민 조선사회의 실체를 찾아가겠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에 입각한 식민지수탈론이 일반적 대세라고 할 수 있지만, 민족주의를 떨쳐버린 식민지근대화론이 아직도 국내에서조차 큰 소리를 내고 있고, 민족주의와 근대주의를 다 벗어던진 식민지근대성론이 새롭게 제기되어 상당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조선사회를 보는 학계의 시각이 탈근대주의와 함께 민족을 떠나 더 넓은 차원으로 접근하려는 경향들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을 위 아래로 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는 민족의 개념을 등한시 할 수 없다. 사과는커녕 보복도 서슴지 않는 일본 아베정권은 이를 분명히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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