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반 고등어

오피니언l승인2019.08.15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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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반 고등어 / 강수화(농촌진흥청)

 어둠을 뚫고 파란색으로 변해가는 새벽하늘이 좋다. 옷감이 덧씌워진 염색을 털어내며 제 빛을 찾아가는 것 같아서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새벽 창가를 통해 맑게 들려온다. 한 낮의 뜨거웠던 열기는 밤새 찬 기운과 밀회를 즐기다 아침 이슬이 되어 대지 위에서 반짝인다. 꿈 많던 학창시절 종종 새벽 창가에 앉아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 때, 엄마가 굽던 고등어 냄새는 나를 현실로 끌어냈다.
 엄마는 자주 잔치집이나 초상집으로 불려 다닐 만큼 요리를 잘하였다. 시장에서 구입한 자반고등어는 짜고 비린내가 난다면서 직접 만들었다. 싱싱한 생물 고등어를 사서 일일이 손질하여 빨래줄에 말렸다. 엄마 손을 거친 고등어는 비린내 없이 간이 딱 맞았다. 그렇게 장만한 자반고등어를 비닐 봉투에 넣어 보관해 두었다가 날씨와 계절에 따라 구이, 국, 찌개, 찜 요리를 했다.
 유년 시절 나는 유독 비린 냄새를 싫어했고 먹거리에 민감했다. 냄새 나는 생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입도 짧았다. 엄마는 나에게 생선을 먹이려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다. 엄마와 겸상을 할 때면 엄마에게 혼날까 눈치를 살피면서 억지로 고등어에 젓가락을 대곤 했지만 맛만 보는 정도였다. 보다 못한 엄마는 숟가락에 고등어살을 올려주고 먹을 때까지 나를 바라보곤 했다. 고등어 맛을 확인한 나는 등 한복판 살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했지만 이내 다른 반찬으로 젓가락을 돌렸다.
 밥상머리에서 식사예절 교육도 많이 하셨다. 젓가락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국에 밥을 말아 먹지 못하게 하고 먹을 때 소리도 내지 못하게 했다. 식사예절이 틀리기라도 하면 혹독하게 나를 책하였지만 생선을 먹는 나의 좋지 않은 버릇에는 한마디 말씀도 없었다. 
 새벽 5시 아침 준비를 한다. 냉동실에서 자반고등어 한 마리를 꺼냈다. 프라이팬을 뜨겁게 한 뒤 고등어를 넣고 불을 줄이고 뚜껑을 닫았다. 몇 번을 뒤집어서 자반고등어를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고등어를 지켜보다가 문득 엄마가 고등어를 굽던 모습이 떠올랐다. 눈가에 눈시울이 돌았다. 곁에 있다면 엄마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고 싶다.
 구워진 고등어를 반으로 잘라 두 개의 접시에 담았다. 하나는 딸의 몫이고, 나머지 하나는 남편 몫이다.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남편은 생선을 싫어한다. 등 푸른 생선이 건강에 좋다고 권해도 막무가내다. 비린내가 거슬리고, 가시 발라내기 귀찮고, 가시가 이빨에 끼는 것이 싫다고 한다. 내가 생선살을 숟가락에 얹어주면 마지못해 먹는다. 내심 다 큰 어른이 편식한다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억지로 먹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 숟가락에 생선살을 얹어놓을 때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해 주시던 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오랫동안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어린 시절 엄마가 해 준 고등어자반이 생각이 나서 몇 년 만에 아침을 먹었다.
 딸아이는 몰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어린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편의 고등어를 딸아이가 먹고 있었다. 남편의 반찬을 뺏어 먹는 것 같아 은근히 얄미웠지만 표시는 내지 않았다. 남편에게 아주 맛있게 구워졌는데 왜 고등어 안 먹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고등어 안 먹어도 괜찮다며 딸이 배부르면 됐다고 한다. 하는 수 없는 나는 생선살을 남편의 숟가락에 올려 주었다.
 새벽부터 자반고등어가 엄마를 기억하게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다. 엄마를 많이 따랐던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괴롭고 힘들었다. 고등어 자반 요리를 할 때면 엄마 생각에 가스레인지를 등지고 앉아 한참 동안 목 놓아 울기도 했었다.
 새벽에 준비한 아침식사는 끝났다. 자반고등어 덕분에 든든한 아침이다. 집안에 자반고등어 냄새가 가득하다. 문득 오늘 식사를 엄마가 보고 계실까하는 생각이 든다. 보고 계신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친근한 고향인 제주도 사투로 말하고 싶다.
 ‘엄마, 고등어 정말 맛 이신 게 마씨.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남수다, 짜지도 싱겁지도 안 허영 딱 맞은게 마씨!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등어 맛이우다’ 라고.(엄마, 고등어 맛있어. 비린내 하나 없이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딱이야! 세상에 하나뿐인 고등어 맛이야) 엄마가 해주던 자반고등어가 그립다.(원고지 1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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