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불빛만 환한 방구석에서/다시 못 볼 것 같은/푸르른 하늘/흐르는 구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새/그리운 사람들/떠올리며/나는//써야 하는데/목이 메어/생각 하다가 눈물이 흘러서//나는…/가난이라고/배고픔이라고/시(시)라고//”(‘꽃의 자슬서’부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로 40여 년을 살아온 신정일이 첫 시집 <꽃의 자술서>(도서출판 작가)를 펴냈다.
  열다섯 어린나이에 현실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위해 집을 떠난 신정일.
  그에게 길은 시요, 인생 자체였다. 길을 시의 행간처럼 걷고 또 걸으며 만행을 자처한 그의 시편에는 절절한 고독과 해답 없는 질문들이 화두처럼 짙게 배어 있다.
  “눈보라의 군단이 몰려오는 길/무릎이 푹푹 빠지는 그 길을 걸었네//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이 되는 눈길을 눈물이 범벅이 되어 걸었네//아버님 장례비를 빌리러 가던/그 하얀 새벽 길”(‘눈길’ 전문)
  4부로 나뉘어져 총 65편의 시를 수록한 <꽃의 자술서>에는 길 위의 인생을 살아온 그의 생 자체가 시로 고스란히 압축돼 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만나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통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가온 생각의 실체를 찾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중략)…다시 시작하렵니다.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몸서리치다가 길을 찾고서야 ‘길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여기던 그  순간을, 비로소 시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신정일 선생은 이 땅의 산천이 길이자 책이었고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사물이 나의 스승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오늘도 멈추지 않고 길을 나서는 그는 ‘길’의 시인이다”며 응원했다.
 

▲ 신정일

진안군 백운면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중퇴 후 독학으로 문학·고전·역사·철학 등을 섭렵하고 수십여년간 우리 땅 구석 구석을 걸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 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사업을 펼쳤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안동대 민속학과 임대해 선생은 “그는 산을 밟는 답산가이자, 산에서 노닐며 산과 대화를 나누는 유산가이며, 산을 읽고 삶을 풀어가는 탐산가다”라고 평했고 김지하는 “삼남 일대를 걸어다니는 민족민중사상가”라고 옹호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답게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다. 2010년 9월에는 관광의 날을 맞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을 만든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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