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선 국민연금공단
 
 
딸아이가 양말에 구멍이 났다며 등교준비를 하면서 난처해 한다. 다른 양말을 신도록 했다. 딸아이는 꿰매준 양말은 실이 발에 닿아 까실거려 불편하다며 투정을 한다. 딸아이의 양말은 늘 첫째발가락에 구멍이 난다. 무안해서 발톱을 깎지 않아 그렇다며 둘러댔지만, 서툰 솜씨가부끄러웠다. 프랑스 자수를 배운답시고 몇 개의 작품을 만든 경험이 있어 양말 꿰매는 것 쯤이야 했는데 아이가 까칠하다는 말에 마음이 상했다. 솜씨가 없던 내 탓이다.
 여학교 시절 가정수업시간이었다. 그때도 많이 서툴렀다. 수틀에 모란꽃과 나비 전통자수를 놓았다. 색감을 살려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손이 서툰 나는 바늘과 실이 따로 놀았다. 적당히 당겨서 실이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하는데 빡빡하게 당겨 천이 울어버렸다. 내가 만든 자수는 제목을 보아야 모란꽃과 나비라는 것을 알만큼 어색했다.
 서툰 바느질 솜씨를 회복하고 싶었던 마음이 늘 있었다. 기회가 생겼다. 3년 전에 SNS를 통해 프랑스 자수인 레이지 데이지수로 놓아진 다이어리 커버를 보았다. 쉬워 보여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다. 레이지 데이지 수는 작은 꽃이나 잎모양을 만드는 꽃자수 기법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느질 솜씨가 나이 들었다고 저절로 느는 게 아닌데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 웃음이 나온다.
 처음 다이어리 커버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린넨천에 레이지 데이지 수를 놓았다. 솜씨와 나이는 별개다. 내가 만든 작품은 아무리 보아도 꽃과 잎이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게다가 바늘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아 린넨천에는 바늘자국으로 구멍이 숭숭했다. 바늘에 얼마나 힘을 들였는지 어깨까지 묵직했다. 숭숭난 바늘구멍이 자수에 자신감을 잃은 내 모습 같았다.
 답답해 하던 선생님이 모든 꽃이 다 똑같이 생기지 않다며 격려를 해 주었다. 한 송이에 꽃잎이 4개인 것도 5개인 것도 있고 잎사귀며 꽃잎도 제각기 색깔도 크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선생님 작품과 교본을 그대로 따라하는데도 서툰 솜씨 때문에 내 작품만 자연스러움이 없었다.
 첫 작품을 경험한 후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바늘첩과 예쁜 꽃을 새긴 가방이나 파우치를 만들었다. 서툰 솜씨라 삐뚤고 색깔이 달랐지만 그 나름의 멋도 있었다. 무엇보다 바늘을 잡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서툰 솜씨가 만족감과 함께 조금씩 향상되었다. 한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작품성보다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라며 스스로 만족을 했다.
 1년쯤 경험을 쌓은 뒤 하트가방을 만들고 싶었다. 검정색에 엹은 먹색과 진청색, 반짝이는 은색이 어우러지면 차분함과 현대적인 느낌이 나서 작품성이 있을 것 같았다. 지도하는 선생님께 얘기했더니, 나뭇잎이 바람이 흩날리듯 자연스럽게 레이지데이지 수를 놓아야 한다고 한다. 아무런 밑그림 없이 린넨천 위에 바람에 날리는 작고 잔잔한 나뭇잎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하얀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바람에 날리는 잎을 그려낼 수 있을까. 그림 재주도 없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바늘에 검정색 실을 끼우면서 괜히 시작했나 하는 걱정과 후회가 앞섰다.
 그냥 편하게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듯 바늘을 움직여보자며 편하게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시작한 나뭇잎에서 제법 바람이 느껴졌다. 같이 수업을 하는 친구들이 잘한다며 칭찬을 했다. 선생님 역시 매우 자연스럽게 잘 표현했다고 했다. 마음 편하게 시작한 하트가방은 내가 만든 작품 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었다.
 편안함이 좋다. 옷도 신발도 양말도 편안해야 한다. 하트가방은 편안한 마음 때문에 좋은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런 편안함을 아이의 양말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구멍을 꿰매면서 발에 닿는 부분보다 밖으로 보이는 부분에만 신경을 썼다.
 딸아이는 바느질 솜씨가 늘어도 양말은 새것으로 사 달라고 한다. 새 양말이 아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앞으로 구멍 난 양말은 자수를 연습하는 재료로 사용해야겠다. 양말의 편안함처럼 나도 아이에게 더 편안한 엄마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까실거리는 실밥을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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