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술 전주시의회의장
 
“지리적, 문화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동북아 지역은 물론이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다.”
 우리 외교부가 2018년에 발간한 외교백서에서 한·일 관계를 기술한 단락이다. 일본 외무성의 ‘외교청서(2018)’에서도 “양호한 한·일 관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있어서 불가함”이라고 기술했다.
 65년 국교 정상화 이후에 삐걱거린 점도 많았지만, 양국 정부는 서로의 신뢰를 공고히 하며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해왔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비롯한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온 중요한 이웃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일 관계의 악화는 매우 우려스럽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으로의 수출 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에 필요한 3개 품목에 대해서 수출 규제를 강화하였고, 첨단재료를 수출할 때 당국의 허가 심사를 면제해 온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절차까지 밟고 있다.
 전자 기기를 제조하는 공정에서 필수적인 소재, 부품, 장비 대부분이 일본 제품이다 보니,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국 경제의 협업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우리 기업을 향한 수출 규제는 사실 일본 기업에도 적잖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출규제나 화이트 리스트 제외 등의 카드를 꺼내든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데 있다.      
 우리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말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배상청구권은 청구권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일본 외무성의 2019년판 외교청서에서는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기술하여 한·일 관계가 다소 멀어졌음을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수출 규제 강화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항하는 조치는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어느 누가 보아도 과거사 문제를 경제 부문으로까지 연계시켰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행 문제를 외교적으로 원만하게 풀어 나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왔지만, 일본은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해버린 것이다.
 그 피해는 애꿎은 양국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거리에서는 일본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일본 제품 불매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어 가는 추세에서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현명한 외교적 줄타기가 필요한 이때에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엄중한 현실과 역사 앞에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부당한 경제 조치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주창했던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차별적인 무역원칙’에 철저히 배치되는 행위는 이제 그만 거두길 바란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산업화와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경제 강국이다. 양국의 문화 콘텐츠와 교육 수준은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두 나라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나갈 공동의 주역이자, 모든 영역에서 전략적인 협력이 요구되는 파트너이다. 우리가 일본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일본도 우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멈추고, 의미 있는 협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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