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8년 만의 외출이다. 내 나이가 여덟 살이니 난생 처음 외출이다. 태어나 눈도 뜨지 못한 어린시절에 형제들과 이곳 대전으로 팔려 왔으니, 낳아준 엄마의 얼굴도 사랑도 모르고 자랐다.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 대전에서 철망으로 둘러싸인 좁은 방에서 살았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나는 장애가 있다. 자폐성 장애다. 동일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정신장애인데 전문가들은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형제들과 어울림이 부족해 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있는데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청소부가 실수로 문을 닫지 않았다고 한다. 바깥세상은 기쁨보다 호기심 자체였다.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조상들이 누린 자유는 어떤 것일까? 철망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이 어떻게 다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열려진 문틈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좁은 우리에서 보는 세상과 바깥세상은 달랐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세상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세상은 분명 달랐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은 신기함보다 천국이었다. 우리 안에서 눈으로 보았던 나무도 벤치도 잔디밭도 벽돌담도 만져보니 모두가 신기했다. 다른 동물들이 나를 보고 움츠렸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나는 겁쟁이다. 공격은커녕 낯선 사슴이라도 만나면 내 몸이 먼저 움츠려진다. 
 낯선 길이라 섣불리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나는 조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활동영역이 넓고 세상에서 제일 날래서 우리 종족을 아메리카 호랑이라고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맘껏 달려보고 싶은 충동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근질거리는 양어깨와 다리를 풀어주고 싶었다. 움츠렸다가 뛰어 보고도 싶었고 맘껏 달리고도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기껏해야 10여 미터 남짓 되는 철망 우리니 어찌 뛰거나 달려 볼 기회가 있었겠는가.
 낯선 길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좋았는데 나를 찾는 사냥개 소리를 듣고 걱정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혀 있고 그렇다고 경험하지 못한 바깥세상으로 도망가는 것은 두렵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빈 박스 안에서 잠시 몸을 숨겼다가 나를 찾는 인기척이 느껴져 몇 차례 자리를 옮겼다.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내가 마땅히 머무를 곳은 없었다. 결국 나는 배수로에서 긴 장총을 가진 수명의 사람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지금 트럭에 누워 있다. 숨을 쉬지 않은 지는 오래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재난이었을까.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고향인 아메리카 초원이나 산악지역에 있는 동족처럼 위험한 존재였을까. 위험한 존재였어도 꼭 총을 가지고 내 목숨을 뺏어야 했을까.
 내가 우리를 나가자 재난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대전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하여 위험하니 외출을 자제하도록 했다. 그 재난문자가 방송과 신문의 긴급 뉴스로 소개되면서 나를 무시무시한 재난으로 만들었다. 
 우리 안에서도 구경거리였는데 트럭에 누워있는 지금은 전 국민의 구경거리다. 구경거리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모른다. 당신이 지금 철망 안에 갇혀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잔인하겠는가. 그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되어 수명이 짧아지는 것을 당신들 구경꾼은 모른다. 지금 트럭에 누워 남들의 구경거리가 된 지금, 나는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인간이 나를 팔았고 철창에 가뒀고 문을 열어주었고 나를 사살하였다고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당장 내가 숨을 쉬며 우리에 다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동물원에 갖혀 있는 다른 맹수들을 보고 살았다. 우리 속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맹수들의 뒷모습을, 야성을 잃어버리고 무기력에 빠져 자포자기한 동물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런 동물에게 사진을 찍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고 유리벽을 두드려도 꼼짝하지 않는다며 욕설하는 소리는 더더욱 듣고 싶지 않다. 생각해보라. 야생에서 누린 자유를 차단당한 동물들이 얼마만큼 삶의 의욕이 있겠는지.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라. 무기력한 동물들은 조상이 포효했던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에야 포수의 힘을 빌어 죽음으로서 자유를 얻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다고 하지만 나는 구경꾼인 당신에게 숙제를 남긴다. 대전동물원에서 첫 외출하여 죽음으로써 자유를 얻은 아메리카의 호랑이인 나, 퓨마는 지금 나의 방송을 보며 구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숙제를 남긴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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