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화 국민연금공단
 
 
아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업무를 끝내고 가려는 데 아이가 옷자락을 잡았다. 나는 갑작스런 손길에 당황스러워 얼굴을 붉히면서 아이를 보았다. 크고 깊은 눈망울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갈망하는 맑은 눈빛이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뿌리쳤지만, 쥐는 힘이 꽤나 강했다. 결국 할아버지가 아이를 떼어냈다.
 입사한지 두 달쯤 되었을 무렵, 출장 중에 그 아이를 만났다. 내근업무가 많아 한 달에 한 두 번 가는 출장이 기다려지는 시기였다. 운전이 가능한 직원과 동행을 해야 해서 일정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마감일전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 한편으로 부담감도 있었다.
 마침 함께 근무하는 부장이 동행해 주기로 했다. 상사와 함께하는 출장은 다소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기한 내에 처리해야 할 업무 때문에 동행자를 가릴 처지가 되지 못했다. 어쩌면, 부장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심을 벗어나자 차창 밖의 풍경이 산과 들로 바뀌었다. 갑갑한 도시 사무실을 벗어나 농촌 풍경을 보니 숨통이 트였다. 부장과의 동행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별다른 말씀은 없었지만, 안경너머 매서운 눈초리가 왠지 두렵게 느껴졌었다. 혹시나 업무처리를 잘못하지 않았을까? 민원응대에 실수가 있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며 눈치를 보곤 했다. 하지만 출장 가는 차안에서 부장은 의외로 따뜻하였다. 가벼운 농담으로 어색함을 풀어 주었고, 정확한 업무처리 방법도 알려주었다. 게다가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농촌인데도 능숙하게 운전해서 목적지를 찾아갔다.
 작은 농촌 마을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주소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부장은 민원인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조금 지나자 옆 창고에서 ‘누구요’ 하면서 어르신이 나왔다. 민원인이었다. 방문한 이유를 말씀드리고 상담을 하려는데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뒤따라 나왔다. 
 눈망울이 큰 아이였다. 민원인의 손자였다. 외딴 농촌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데 마을에서 유일한 어린이라고 한다. 아이를 맡길만한 곳이 없어 농촌에 있는 부모님께 맡겼겠지 하면서 상담을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드문 외딴 농촌에서 사람이 반가웠는지 장난을 멈추고 우리를 말똥히 쳐다보았다. 부장이 ‘어르신 손자인가 봅니다.’ 하며,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부장의 말에 한숨을 쉬고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는 아들이 맡기고 갔는데 아들은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연락이 없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간 것이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낳고 도망갔다고 한다. “시골에서 늙은 내외가 아이를 잘 돌보지질 못해, 같이 놀 동무도 없고... 우리가 아무리 한다고 한들 엄마만 하겠어?” 하시며 한숨을 쉬신다. 엄마 없이 크는 손자가 안타까워서일까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우리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아이의 눈동자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말이 없고 조숙해 보였다.
 안타까운 사연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부장이 할아버지와 상담을 하는 동안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업무를 끝내고 나오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나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라고 불렀다.
 엄마의 정이 그리워서일까. 아이는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엄마 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나 애처로운 맘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아이는 젊은 여자만 보면 엄마라고 매달린다고 한다. 그 말이 내 맘을 더 슬프게 했다. 그날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부장도 나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이의 애처로운 눈망울을 본지 십여 년이 지났다. 당시 내가 철이 없어 매달리는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지금쯤 그 아이는 고등학교쯤 다니지 싶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의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수많은 인간사에 어찌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 없겠느냐만은 어미와 떨어진 새끼만큼 애처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지금쯤 그아이는 엄마를 찾았거나 아니면 정 많은 조부모 아래서 믿음직한 청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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