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지금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는 불통의 상황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불통은 정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경제계는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도 불통으로 인한 소요와 사고들이 빈번하다. 우리나라는 518년 동안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시대를 구축했던 조선왕조 이래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 현대사의 압축적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1953년 이래 전쟁은 없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태평성대’론을 입에 올리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불통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막말들과 4월의 국회에서 있었던 몸으로 하는 정치와 같은 폭력적 사태 등은 불통을 넘어서 필자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의 수출규제 조치도 불통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입규제를 통해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려는 사례와 논리들은 들어도 봤고 이해도 되지만, 수출규제라는 용어는 낯설기까지 하다. 수출규제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만일 보복적 힘의 과시라고 한다면, 억압과 불통을 무기로 삼는 격이어서 21세기에 20세기로 퇴행하는 대열 정비로까지 느껴진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아이를 인질로 삼고 돈을 요구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경시하는 잘못된 연대이며, 돈으로만 소통과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난무하고 있기도 하다. 
 불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해결책 제시가 쉽지 않은 사회구조적인 모순이라는 원인은 지면과 능력의 한계 상 접어두기로 하고, 사회구조 외의 미시적 원인을 살펴보자. ‘어쩌면 불통을 선택함으로써 얻는 만족이나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불통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심리적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에 생각이 다다른다.
 생각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볼 때, 첫 번째 원인으로는 소통이 없는 불통의 방식으로도 자신이나 자국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불통으로 고통 받는 상대방이나 상대 국가를 통해 뭔가 만족스러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불통을 선택하거나 불통해버리는 것일 게다. 두 번째는 환경적 요인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탓에 불통을 불통인지도 모르면서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 세 번째, 자신이나 자국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와는 물론이고 타인이나 타국과 소통할 수 있는 심리적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원인들의 해결책을 예술에서 찾을 수 없을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소통을 원하는 존재이다. 아마도 불통하는 집단이나 개인들도 소통의 기쁨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소통의 경험과 학습이 미흡하였거나, 소통보다 불통의 힘을 우위에 놓는 데 익숙하거나 늘 불만투성이인 생활습관이 불통을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소통경험 부족과 불만에 익숙한 악습관을 줄여나가는 데 적절한 방안으로 예술에 대한 접근을 제시해본다.
 예술 활동을 즐기는 습관을 늘려가는 것이 소통의 경험과 학습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물론 예술 창작을 직접 한다는 것은 기획과 실천단계의 전 과정에서 일종의 기술과 노동과 고통과 인내를 투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즐기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창작된 예술작품을 즐기는 일은 여유와 생각의 통로로 들어가는 일이며, 자기 안식과 자기 소통을 하는 일이 된다. 대중음악이든 클래식 음악이든 음악을 듣고, 설치미술이나 회화 등을 관람하고, 시집을 꺼내어 읽는 일은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에게 시간을 할애해주는 일이며, 그 결과로 여유를 선물받는다. 여유를 갖게 되면 자기 스스로 소통하게 되고, 타인에 대해서도 여유롭게 판단하게 된다. 예술이나 여가 없이 노동과 돈과 윤리와 영웅심과 같은 강박만 있는 세상은 그 잣대로만 상대를 판단하기 때문에 일방적 불통의 세상을 만들고, 결국 불통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소통과 예술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예술인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단순히 보편적 인권 존중 차원이 아니라,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사회의 소통을 보증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즐길 수 없는 도시와 국가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는 공간이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창작된 작품들을 줄기면서 스스로 대화하고 다짐하며 한걸음씩 세상을 향해 나아가서 세상과 소통한다면, 소통의 사회와 시대를 만들어가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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