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선 전북대 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다리목마을 천대감골로 이주하여 온지도 벌써 만10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귀농 차원에서 야심만만하였으나 여느 전원생활 하시는 분처럼 갖은 시행착오와 함께 지난 10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처음에는 내 몸의 몸무게도 좀 줄이려고 정말로 농사를 지으시는 분처럼 육체적인 일을 참 많이 했다. 밭에 돌을 골라내도, 골라내도 한없이 나왔다. 그 외의 일들을 다 했다. 그런데 일을 하더라도 동네 어르신들이 가르쳐준 대로 하였어야 되었으나 일단 무시하고 내 방식으로 하였다. 그리고는 심을 수 있는 것은 다 심었다. 많을 때는 한 40여 가지 이상을 심은 듯싶다.
 물론 무슨 큰일은 하는 것처럼 유기농·무농약을 한다고, 농약도 안 하고 화학비료도 주질 않았다. 물론 대실패였다. 그 쉬운 상추도 쉽지 않았다. 이때 깨우친 것이 전문가의 말을 따라야 된다는 것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농사만 60~70년을 지으신 분들이다. 무슨 경험을 하지 않았을 것인가?
 해보니 100% 무농약·유기농은 사실상 힘들다. 어느 해에는 토마토에 무농약으로 했더니 20~40%가 진딧물에 공습을 당하여 소출이 50%도 안 되어 아주 힘들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집 전체에 제초제를 안 한다고 예치기로 풀도 베고 호미로 매고 하였으나 시간도 엄청 걸릴뿐더러 금방 풀이 자라난다. 그러나 제초제 통을 메고 1~2시간만 뿌리면 풀도 한동안 안 나고 얼마나 편한가?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일을 해도 꼴이 나질 않았다. 밭을 맨다고 하였으나 더 지저분해지기 일쑤였고, 잘 자라는 것을 죽이고, 경험이 일천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최소한 5~10년 이상은 배워야 어르신들 흉내라도 낼 것 같았다. 이러한 것들도 동네 어르신들의 전문가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니까 상추도 10~20포기만 심으면 될 것을 100포기를 심는 둥 양도 아주 많이 심었다. 그러니 수확하는 것도 어렵고 수확해서도 처치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직장동료에서부터 서울 친척, 아시는 분들께 택배를 부치기 시작하였는데 어느 때는 한 번에 택배비만 10만 원을 상회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스쳐가는 생각이 내가 상추를 10만 원어치 사다 먹으면 평생 상추만 먹어도 다 못 먹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양도 현실적으로 맞추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부터는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대비 생기는 소득을 비교하고 보니 순전히 적자이다. 지난 10년 동안 적자 폭이 생각보다 컸다. 적자 폭이 내가 경작하는 것을 다 사 먹어도 남을 정도이니 전혀 경제적인 짓을 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닌가? 적자도 한해 두해이지, 이것을 더 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지금은 전혀 심지 않는다. 다리목동네에 나가면 이웃 밭에 먹을 것이 지천이다. 말만 하면 다 그냥 서로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러다가 더 필요하면 소양/완주 로컬푸드로 가면 된다. 놀게 되는 밭은 우리 마을 정장로님 보고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올해는 들깨와 고구마를 심어 주셨는데 멧돼지가 변수이다. 어느 해에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집안까지 들어와 수확 2~3일전에 다 먹어 버렸다. 이때의 낙심이란! 그래서 내가 직접 해보니 농산물을 함부로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만나는 사람들 마다 잔소리를 해댄다.
 이렇듯 지난 10여 년 동안에 전원생활과 귀농한답시고 좌충우돌하면서 깨달은 교훈은 (1) 전문가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된다, (2) 지역인들과의 소통·협치를 해야 된다, (3)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를 해야 된다. (4)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된다, (5) 어느 일이건 간에 경제적으로 적자를 보면 안 된다 등이다. 그러니 한 가정도 이러니 큰 덩치인 국가의 경영은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지난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적인 작물종류를 선택하려 이리저리 공부를 하고는 있으나 여기서 농사만 50~60년 지으신 분들도 쉽게 못 하시는 것을 어떻게 경험이 미천한 내가 하겠냐 말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해월리에 오는 하지를 10년째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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