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받지 않은 이방인

오피니언l승인2019.05.15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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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 농촌진흥청
 
 내 일상은 출장의 연속이다. 집을 떠나 타지로 떠도는 이방인이다. 직장생활 3일 중 하루는 출장이다. 처음 이방인 생활을 할 때에는 호기심과 설렘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은 방전되어 힘이 든다.
 오늘도 이방인 생활을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일이 시작되어 일요일 오후에 전주에서 출발했다. 출발 시간 40분 전에 짐을 챙겼다. 짐이라야 단순하다. 옷, 화장품, 세면도구, 신발, 책, 노트북이다. 가방에 대충 넣고 출발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일행이 4명이다. 남녀 각각 2명이다. 우리는 소형자동차에 짐을 싣고 고속도로로 올랐다.
 내가 소속한 직장은 국가농업연구개발을 위해 예산과 농업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대학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 등 지원하는 기관이 다양하다. 나는 정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확인하고 부정사용 예방을 위해 이방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 목적지는 대구시내에 있는 농업연구기관이다. 그곳에서 1주일동안 생활을 해야 한다. 전주를 출발하지 세 시간이 지나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우선 예약한 숙박지를 찾았다. 이방인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잠자리다. 객지에서 잠을 자는 것도 힘들지만 숙박지가 모텔이라 더욱 불편하다.
 “대실인가요?”
 모텔 직원의 첫인사다. 출장 때마다 듣는 말이다. 처음에는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지만, 요즘은 적응이 되어 그냥 웃어넘긴다. 붉은 네온사온 빛이 찬란한 유흥가 한 복판에 모텔이 있었다. 저녁 시간인데 모텔 주위의 가게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업무상 출장 왔다며 답을 하자 그제야 예약을 확인하고 방을 내 준다.
 다음날 아침 수감기관에 도착 했다. 전날 점검장을 확인하고 담당자에게 바로 가겠다고 알려주었다. 얼마 후 담당자가 점검장으로 왔다. 경직된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회의장에는 미리 요청한 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자신의 업무를 시작했다. 점검 계획이 확정되면 우리는 사전에 자료를 검토한다. 현장에서는 사전에 발견한 특이사항을 확인하는 절차가 많다.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수감자의 불쾌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럴때면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특이사항으로 확인되면 수감자를 이해시키고 시정해야 할 것을 설득하려 노력을 한다. 요즘 감사나 점검은 잘못된 업무처리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사전에 부정이나 특이한 사항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수감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무하는 기관은 다르지만 나보다 훨씬 윗사람이다. 전화를 타고 오는 목소리는 굵은 바리톤 음성의 저음이었다. 점검에 대한 항의전화였다. 그의 전화를 받고 있는 내내 마음이 언짢았다. 그는 직장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내게 퍼붓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점검을 하다보면 이런 일은 흔히 겪는다. 그때마다 감정의 동요 없이 무시하고 넘겨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가슴속에서 열기가 확 달아올랐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떨렸다. 눈이 붉어지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매달렸다. 내가 수감자에게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반응할 것 같아 두려웠다. 점검반은 차가운 얼음이 되어야 한다. 사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야 하고 상대의 거친 항의를 조리 있게 넘겨야 한다.
 짧은 순간 딸아이가 떠올랐다. 부끄러운 엄마가 되기 싫었다. 윤리적인 선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그냥 덮는다는 것은 내 직분과 아이의 엄마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수감자에게 점검 결과를 조근조근 설명을 했다. 결국, 수감자는 특이사항을 인정하였다. 통화는 1시간이 한참 지나서 끝이 났다.
 하루의 일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스트레스를 풀 겸해서 오랜만에 소주를 주문했다. ‘처음처럼’ 이라는 소주가 나왔다. 장사를 위한 상표지만 ‘처음처럼’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처음처럼’이란 단어를 새기며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끼리 꽤 많은 술잔이 오갔다.
 짧은 기간이지만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의 생활이 끝났다. 금요일 전주로 오는 고속도로에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냈다. 전주에 도착할 무렵 점검반의 얼굴이 밝았다. 가족이 있는 집으로 복귀하는 기쁨 때문이다. 초대받지 않는 이방인 생활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초대받지 못하는 나의 이방인 생활로 국민의 세금과 윤리적인 부정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나와 내 부서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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