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910년 3월 안중근 유언-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은 개인은 물론 그의 집안 전체가 임시정부와 깊은 연을 맺는다.

여성독립운동가인 조마리아 여사는 자식들을 독립운동가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독립운동 선전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인 동생 정근, 임시정부의 외교관이자 한인애국단의 조직에 참여한 동생 공근, 중국군에 배속돼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광복군 주난징대장을 지낸 조카 춘생, 임시정부 과원으로 역할을 한 조카 우생 등 대를 이어 임시정부와 함께 한다.

혹독한 시절 독립된 나라를 염원하며 기꺼이 목숨을 던진 이들의 역사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안중근을 찾았다.<편집자주>

하얼빈(哈爾濱)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다. 중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꼽히는 이 도시는 동베이(東北) 평원 중앙, 헤이룽강 최대의 지류인 송화강(松花江) 연변에 위치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하얼빈 타이핑 국제공항(哈爾濱太平國際機場)까지 2시간 10분이면 닿는다.

여름에는 하얼빈국제맥주축제, 겨울에는 빙등제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하얼빈은 관광지로써가 아닌 역사적인 의미에서 특별한 곳이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 초대 총리이자 조선 침탈과 식민화에 착수한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장소인 이유다.

지난 9일 찾은 하얼빈역은 역사를 이용하는 중국 현지인들의 바쁜 걸음, 플랫폼을 지나는 열차들로 여느 기차역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동북지방의 북부 거점이며 러시아 철도와 연결되는 만주 횡단철도(TMR)의 주요 경유역인 하얼빈역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장소다. 1899년 처음 문을 연 하얼빈역은 2번의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과거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단행하던 그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3발의 총을 쏘았다. 남은 총알로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 俊彦), 이토의 수행비서 모리 다이지로(森 泰二郞),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타로(田中 淸太郞), 만주 철도 이사 나카무라 요시히코(中村 是公)를 맞췄다.

안중근 의사가 쏜 3발이 이토의 복부에 명중해 열차 안으로 옮겨진 이토는 30여분 뒤 숨을 거뒀다. 메이지유신과 일본 근대화의 주역이자 대한제국 침략의 주범인 이토를 31세의 안중근이 쓰러뜨린 순간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뜻하는 “꼬레아 우라(Kopeя ypa)”를 외쳤다.

丈夫處世兮 其志大矣 장부가 세상에 있음이여, 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 英雄造時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雄視天下兮 何日成業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꼬

東風漸寒兮 壯士義烈 동풍이 점점 참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憤慨一去兮 必成目的 분개히 한 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鼠竊伊藤兮 豈肯比命 쥐 도적 이토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꼬

豈度至此兮 事勢固然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오, 사세가 본디 그러하도다

同胞同胞兮 速成大業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萬歲萬歲兮 大韓獨立 만세, 만세여, 대한 독립이로다

萬歲萬歲兮 大韓同胞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단행하기 전 남긴 한시 ‘장부가’로 그의 기개와 뜻이 느껴진다.

하얼빈역 한편에는 중국 정부가 개관한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2014년 1월 19일 처음 문을 연 기념관은 하얼빈역 확장공사로 인해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임시 이전했으나 지난달 30일 재개관했다.

입구에 세워진 그의 동상과 거사하던 시각에 멈춰선 벽시계를 마주하는 순간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부에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각종 사진과 사료들이 전시됐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1번 플랫폼의 삼각 표지도 유리창을 통해 직접 볼 수 있다.

이날은 전남에서 찾은 단체 관광객은 물론 중국 현지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중국 내에서도 저명한 항일 의사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이 직원 설명이다.

하얼빈역에서 차로 20분 거리, 하얼빈 중심에 위치한 자오린공원(兆麟公园)은 1906년 처음 문을 열었다. 1946년 3월 9일 중국 항일 전쟁영웅 리자오린(李兆麟) 장군이 이곳에 안장됨에 따라 그를 기리기 위해 따오리공원에서 자오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자오린공원은 안중근 의사와의 접점 또한 크다.

자오린공원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장소다. 사형대에 올라 조국이 독립될 때까지 자신의 시신을 묻어달라고 유언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공원 남쪽에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쓴 휘호 ‘청초당(靑草塘)’이 기념비에 세겨졌다. 청초당은 ‘못가에 파란 풀이 돋아난다’라는 뜻으로, 암울한 일제치하에서도 못가에 봄풀이 돋아나듯 독립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과 염원을 담고 있다.

죽은 뒤에도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겠다던 안중근의 유해는 1910년 순국해 109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고 있다. 청초당,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명록에 지난 7일 남긴 ‘남과 북이 힘을 모아 통일된 조국을 이루시게’ 글에 가슴이 시린 이유다./하얼빈=권순재기자·aonglhus@<지원 한국기자협회·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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