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현 한국전기안전공사 홍보실
 
 
직장 선배가 지구 한 바퀴 걷기에 도전한다고 한다. 평소 걷는 것을 즐기는 선배는 꽤나 거창한 목표를 잡았다. 지구 한 바퀴라니 나에게는 상상이 안되는 거리지만 선배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 한 바퀴는 대략 4만 키로 정도이다. 나는 평소 십분 거리의 출근길에도 차를 이용하는데 4만 키로라니. 내가 평생 걷는 거리를 합해도 4만키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꿈의 숫자지만 선배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내가 응원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다. 선배는 강한 다리만큼 강인한 심장과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사내에서 헌혈왕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다른 사람에게 혈액을 많이 나누어 준다. 지난해에는 헌혈을 한 횟수가 200회가 넘어 대한적십자사에서 ‘명예대장’이라는 훈장까지 받았다. 선배의 자상한 성품도 좋지만 따뜻한 마음에 더욱 정이 간다.
 헌혈 200회의 혈액의 양은 80리터라고 한다. 일반 성인 인체를 구성하는 혈액이 4~6리터라고 하니, 선배의 헌혈량은 어마아마하다. 선배의 헌혈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거나 생명을 건졌을 것이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만 할 수 있다.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관리가 기본이라고 한다. 선배는 평소 걷기 운동으로 몸을 관리해 왔다. 이번 지구 한 바퀴 걷기 도전은 현재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아보는 일종의 테스트일 것이다.
 지구 한 바퀴 걷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직장 동료들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술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지만 선배는 다르다. 퇴근 후에도 운동에 전념한다. 중간에 포기할 법도 한데 선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한다. 마치 알람이라도 맞춰놓은 것처럼 매일 걷는다.
 퇴근 후 한 잔의 술은 운동보다 즐겁다. 화려한 불빛아래서 오늘 하루의 회포를 푼다. 자신과 마주앉은 다른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술로서 스트레스를 푼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몸을 한 잔의 술로 풀고 흥까지 돋운다. 1차가 끝나면 장소를 옮겨 오늘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할 2차를 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소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선배는 회사 헬스장에서 걷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온 몸을 짓누르는 피로도, 회식자리의 독한 술도 선배의 걷기 운동을 막을 수 없다. 스님의 좌선이 떠오른다. 선배에게 걷기는 힘들어도 꼭 해야 하는, 스님의 좌선과 같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건한 행위인 것이다.
 나도 걷기 운동을 즐겨하던 때가 있었다. 덕분에 체중도 상당히 줄였고 건강도 좋아졌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몸이 피곤하단 이유를 핑계로 운동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줄였던 몸무게는 운동 전으로 돌아왔다. 공들여서 노력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복원됐다.
 선배의 도전에 자극받아 오랜만에 러닝머신 위에 서봤다. 잠깐 걸었는데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숨이 가빠진다. 심장이 고동치며 혈액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살아있음이 느껴짐도 잠시, 힘이 잔뜩 들어간 종아리는 기름칠 하지 않은 자전거 바퀴처럼 삐걱댄다. 운동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며 그만하라고 몸이 외친다.
 운동다운 운동도 하지 못하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져 버린 꼴이 되었다. 선배를 따라하다가 저질체력만 확인했다. 지구 한 바퀴 걷기도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할 것이다. 나에게 도전하라고 하면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선배는 500여일 동안 1만 5천 키로를 걸었다고 한다. 도보여행을 떠났다면 우리나라에서 출발하여 남아메리카 칠레까지 도착했을 거리다. 칠레의 어느 바닷가에서 이국의 햇살을 마주하며 걷고 있는 셈이다. 비록 몸은 그곳에 있지 않지만 마음만은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걷고 있는 것이다.
 선배의 아름다운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어떤 유혹이 다가오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우직하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하지 못하는 좋은 일을 지켜보는 기쁨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도전을 달성하는 날, 고생한 선배에게 술 한 잔 사드리고 싶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