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선 전주대학교 부총장

 

황금돼지해인 2019년 기해년이 밝아온 지 벌써 두달이 되어간다. 특히 매년 설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세배도 하며 한해에 대한 구상과 함께 덕담을 나누곤 한다. 올 설날에도 가족과 함께 모여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겠지만 언어학자로서 가족들과 뜻깊은 대화를 나눴던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의 상승과 최근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어의 세계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고유문자인 한글의 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Ethnologue: Languages of the World 21차 인터넷판에 의하면 2019년 현재 지구상에는 7,097개의 언어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는 한글을 포함하여 약 180여 종류가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언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라틴로마자로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포함하여 약 816개의 언어의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라틴로마자가 세계적인 문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의 유연한 사고와 라틴로마자의 다양한 변모에 따른 것이다.
 영어알파벳의 기본이 된 라틴글자는 라틴인이 그리스글자를 도입하여 라틴어를 표기할 수 있도록 적절히 다듬고 고친 것이다. 로마인이 맨 처음 에투리아 문자를 차용하던 기원전 4세기에는 26자 가운데 21자만을 받아들이는데 그쳤다. 라틴어에서 사용되던 고전 라틴문자 23자를 서유럽을 정복한 로마인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로마자라 불렸으며 서방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 로마제국에 속해있던 각 민족이 그들의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고전라틴 로마자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유럽의 다양한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는 라틴로마자 23자만으로는 표기할 수 없었다. 특히 모음자가 5개뿐인 라틴로마자로는 다양한 유럽언어의 모음을 표기할 수 없었다. 유럽의 제 언어들을 표기하기 위해 라틴로마자를 수정·보완하였다. 필요하지 않는 글자는 버리고, 필요한 글자는 추가하였다. 심지어 다른 문자의 표기를 빌려오거나 변형시켜서 자신의 언어를 표기하도록 하였으며, 이로 인해 유럽의 다양한 언어의 표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음소를 표기하는데 두 글자 혹은 세 글자를 결합하여 사용하는 방법 또는 특수문자를 이용하여 표기하는 방법 등을 허용하여 라틴로마자가 세계문자로 사용되도록 하였다. 라틴로마자가 국제문자로서의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라틴로마자를 다양하게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음성학회(the International Phonetic Association)에 따르면 세계 언어의 자음은 약 59개, 모음은 약 28개가 있다. 따라서 현대한글에서 사용되는 한글 자모 24자 혹은 옛한글을 포함한 28자만으로는 세계의 주요언어인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을 표기할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언어를 표기하기에는 부적합할 수밖에 없다. 한글을 24자로 한정하는 배타성과 폐쇄성은 세계적인 문자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한글의 문자력(文字力)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한글의 세계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한글이 세계문자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한글의 허용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따르면 “지성에서는 헬라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 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르투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이 마지막 승자로 남아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의 유연성과 개방성 때문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한글이 세계적인 문자체계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한글 24자 혹은 28자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에 사용되고 적용될 수 있도록 특수문자 혹은 2~3자를 활용한 새로운 한글을 만들어 전 세계 언어에서 표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한글의 세계화를 이루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한글에 대한 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통해 2019년에는 한글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원년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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