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양주 회암사지, 남양주 광릉ㆍ사릉과 다산유적지, 춘천 남이섬 등을 답사하였다. 전주역사박물관ㆍ어진박물관ㆍ전주문화연구회가 1년에 두 번 진행하는 1박 2일 답사프로그램이다.
첫 번째로 찾은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가 말년에 자주 머물렀던 사찰로 제일 상단에 정청(政廳)이 있는 특이한 공간구조이다. 회암사지 위로 가면 무학대사, 나옹선사, 지공선사의 부도가 있다.
세조 왕릉인 광릉과 단종비 정순왕후 여산송씨 사릉을 거쳐 북한강을 따라서 해질녘에 도착한 두물머리는 소문대로 나들이객이 넘쳐났다.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만나는 곳으로 해질녘 풍경은 사람들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아침에 찾은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을 막으면서 북한강의 물이 들어와 섬이 된 곳이다. 10월로 사람들이 몰리는 시즌이 끝났다고 하는데도 인파로 넘쳤다. 남이섬을 자주 오는 분이 올 때마다 새롭다고 하였다. 전주한옥마을을 생각하게 했다. 
남이섬을 나와 다시 두물머리 아랫 쪽에 있는 남양주 다산 정약용 유적지로 향했다. 다산묘소, 다산고택 여유당,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다산유적은 주변의 자연경관, 문화유산과 어우러지면서 문화관광의 명소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광장에서는 통기타밴드의 정겨운 노래가 이어졌다. 세조가 중창하였고 다산이 자주 찾았다는 수종사는 시간상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다산유적지는 자연스레 우리지역 부안 우반동 반계 유형원 유적지를 떠올리게 했다. 다산이 실학의 완성자라면 반계는 실학의 문을 연 비조이다. 정인보는 실학 계보를 반계가 1조(一祖), 성호를 2조(二祖), 다산을 3조(三祖)라고 정리하였다.
반계는 부안 우반동으로 내려와 무려 20여년에 걸쳐 조선사회 전반에 관한 개혁론을 구상하였다. 그는 조선사회를 총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촘촘히 논리를 갖추어 큰 틀을 제시하였다. 반계는 오직 조선사회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매진했고 그것이 '반계수록'으로 집대성되었다.
그 산실이 부안 우반동이다. 우리 지역이 반계의 가치를 단지 실학의 비조라는 선에서만 이해하고 그가 이루어 놓은 그 큰 산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반계가 펼쳐놓은 개혁론의 대단함과 그 위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반동 반계유적지는 쓸쓸하다. 다산유적지에 사람이 넘쳐나는 것에 반해 반계 유적지는 적막하다. 다산 생가에 실학박물관과 다산문화원이 있음에도 다산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강진 다산초당 일원에 다산박물관과 연세대 부설 다산실학연구원이 있다.
부안에는 반계 정신을 이어가고 보여주는 어떤 기관도 없다. 반계에 관심을 갖고 호남실학원 건립이 추진되었으나 거의 좌초되는 분위기이다. 매년 열어왔던 반계 학술대회도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적어도 반계 개혁사상을 밝히고, 부안에서의 생활을 밝히는 학술대회는 이어져야 한다.
호남실학원 설치가 어렵다면 부안 우반동에 반계 유형원 실학박물관 건립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의 실학사상을 담고, 그가 조선을 어떻게 개혁하려고 하였는지를 큰 틀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반계를 보면 조선이 보인다. 그러기에 작고한 워싱턴대 짐팔레교수는 '반계수록'을 평생 연구하여 조선에 관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우반동 주변으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빼어난 문화유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천하제일이라는 고려청자 양대 생산지 부안 유천리,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정사암, 도적굴, 선계폭포, 곰소항, 내소사, 바다를 따라 난 해안도로, 내변산 등이 그 가까이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새만금방조제가 있다. 부안은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부안 우반동에 반계 박물관이 건립되어 주변 자원들과 같이 어우러진다면 반계유적지도 명소가 될 수 있다. 남양주 다산유적지도 본래부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 아니었다. 예전의 다산유적지는 지금의 반계유적지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계묘소가 있는 용인시 백암면에는 지역민들이 반계선양회를 결성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계라는 큰 인물을 우리 지역은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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