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대웅전

옛날 사람들은 마을 대신 ‘마실’이란 말을 자주 써왔다. 할머니가 ‘나 마실 나갔다 오마’ 하고 나가시면 이웃집에 가서 두어 시간 담소를 나누고 온다는 뜻이었다.

마실 길은 지금도 충청도, 경상도 등에서 사투리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놀러 다녀온다는 말보다는 여러모로 정감 있는 말이다. 이러한 ‘마실’을 테마로 한 길이 바로 김제 모악산 마실 길이다.

모악산은 그 산세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과 같다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느리게 걷는 모악산 마실 길은 어머니의 넓은 품안으로 안겨드는 격려와 치유의 길이다.

모안산이 품고 있는 것은 단지 자연만이 아니라 마음과 사람 그리고 오랜 시간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모악산의 ‘모’자는 ‘어미 모(母)’자를 쓴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가, 아이를 품은 어머니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모악산 마실 길은 전주, 완주, 김제에 걸쳐 있는데 그중 김제시에 속하는 구간은 2개의 코스이다.

1코스는 21km, 2코스는 13km로 각각 이십 리, 십 리 남짓한 길이다. 1코스는 귀신사~싸리재~남강정사~금평저수지~금산사~배재(완주 경계) 코스, 2코스는 금산사 주차장~귀신사~금산사 주차장 순환 코스이다.

-금산사

모악산 마실 길의 가장 큰 볼거리는 금산사다.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되었으니, 그 역사만 1400년이 넘는다. 혹시 후백제의 견훤이 금산사에 유폐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신라 말 후백제 때 견훤은 자신을 견제하는 아들에 의해 금산사에 감금됐다. 비록 견훤 자신의 지략으로 탈출에 성공, 고려 왕건에게 귀순하였으나 한 나라의 왕이 유폐된 장소이다.

금산사는 견훤의 역사 외에도 많은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이 이곳에서 대거 봉기하자, 이를 괘씸히 여긴 왜(倭)가 금산사를 불태운 것. 이후 금산사는 조선 인조 13년(1635)이 돼서야 일부 재건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금산사 용명 스님이, 이곳의 가람을 빼앗으려는 일제의 야욕에 맞서 싸우다 순교하기도 했다.

-금평저수지

금산면 청도리 증산법종교 앞에 있는 금평저수지는 만수위 면적이 1,042ha이며, 1961년도 에 축조된 저수지로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인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저수지이다.

저수지 주변은 휴식공산을 연결하는 수변 산책로와 야생화단지가 있어 색다른 웰빙 체험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청둥오리가 많이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귀신사

진리의 화신인 바로자니불을 중심 부처로 모신 법당으로 신라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중 승병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보물82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외 명부전 및 연화대석, 부도, 석수, 석탑등 많은 유물들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아대숲길

대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곳으로 경치가 매우 운치가 있다./김제=최창용기자.ccy@jl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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