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

요즘은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어서, 흔히 ‘신록의 오월, 창취한 유월’이라고 한다. ‘창취(蒼翠)하다’는 말은 다 아시다시피 ‘나무가 우거져 싱싱하게 푸르다’는 뜻이겠다. ‘금강산’도 봄철 이름이지,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으로 따로 부르는데, 이는 '계곡과 봉우리에 짙은 녹음이 깔려 신록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여름철과 연관된 '봉래'라는 말에는 신선사상이 곁들어있는데, 우리 봉래산은 도교에서 말하는 소위 중국 전설상의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또 16세기 조선 명종 때 문인 양서언은 자신의 호를 ‘봉래’라고 함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오늘 5월 21일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인 소만(小滿)으로, 태양이 황경(黃經) 60도를 통과할 때를 말한다.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든 소만은 햇볕이 풍성하고 삼라만상이 점차[小]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절후이다. 그런 연유로 17-8세기 조선 헌종 때 학자 정학유(丁學游)의 가사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 “[음력] 4월이라 맹하(孟夏, 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고 읊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하는데, 한편 요때 부는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꽤 차고 쌀쌀하기도 하여,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이다.
소만 무렵에는 보리 싹이 부쩍 성장하고, 산야의 온갖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농부들은 모내기 준비를 서두르는 등 본격적인 농번기에 접어든다.
흔히 삶의 과정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주로 그 시종(始終)이 확연한 서구적 세계관이 담겨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동양권에서, 이 과정은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臟)으로 보며, 시종의 구분이 없이 쭉 이어져 도는 순환론적 사고의 역사로서 후세를 이어가야 함을 함의한다. 즉,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은 낳고[生] 성장하고[長] 이루고[化] 거두어서[收] 저장한다[藏]는 다섯 가지 과정의 일생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양하 님의 '페이터의 산문'에 인용된 바 있는, 호머의 시 '일리아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실로 요즘 계절에 읊어볼 만한 구절이 아닌가 싶다.
근래 숨 가쁘게 전개되는 시국 상황을 볼 때, 우리 인간관계나 남북 간의 관계도 이제 막 생(生)하였으니 성장하고 이루면서 점차 가득 차올라 이윽고 거두어들여 든든하게 저장할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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