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지난 월요일 전주방송 시청자위원회에서 모악산 송신탑에 다녀왔다. 오랫만에 올라와 본 모악산 정상은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송신탑은 그대로였지만 군부대가 철수했고 모악산 정상은 개방되어 있었다. 송신소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 모악산 주변 산세를 둘러 볼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인터넷을 찾아보니 2008년부터 KBS 송신탑 건물 옥상을 개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군부대는 언제 철수했는지 찾지 못했다. 어딘가에는 기록이 있겠지만 검색이 되지 않아 아쉬웠다.
모악산 정상비 앞에 주변을 담은 안내판이 있고, 누군가 거기에 산봉우리 이름을 써 놓았다. 미세먼지가 낀 것인지 시야가 흐려 멀리 볼 수 없었지만 산 이름을 알 수 있게 해놓아 반가웠다. 모악산에 다닐 때 주변의 산이름이 궁금해 이를 표기한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악산은 금산사가 자리한 미륵신앙의 도량이자 신흥종교들이 번성했던 곳이다. 통일신라 진표의 미륵신앙, 조선중기 정여립의 대동사상, 조선말 강증산의 후천개벽사상 등 모악산은 전북 정신사의 어미 같은 곳이다. 거기에다 모악산은 후백제 견훤의 금산사 유폐라는 뼈아픈 역사까지 담고 있다.
모악산이 그런 곳이다 보니 송신소용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그늘에서 쉬면서,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이 산이 안고 있는 지역사에 관한 한담이 이어졌다. 견훤이 집안단속을 못해 망했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견훤이 후삼국체제로 자족하려 한 것이 왕건에게 패배한 요인이라는 이야기도 오고 갔다.
모악산 자락 김제 용암마을에 있는 정여립의 용마 무덤 발굴에서 무엇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역사 전공자들이 아님에도 참석자들의 지역사에 대한 관심과 식견이 대단했다.  
그러면서 전라도가 일인자가 되지 못해 차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연스레 전북의 저항정신으로 이어졌다. 저항정신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공감하는 전라도 정신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주와 전라도의 정신을 ‘저항과 풍류’로 보았다. 그리고 저항과 풍류는 한 뿌리에서 뻗은 두 가지라고 하였다. 저항 없이는 풍류도 없다고 하였다. 저항과 풍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저항과 풍류를 합치시킨 탁견이다.
전라도의 정신을 저항과 풍류로 보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풍류에 대해서는 예향, 문화예술의 도시 등 어떻게 표현하든 이견이 없다. 다만 저항에 대해서는 ‘변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전주정신연구위원 회의에서 전주의 저항정신을 놓고 여러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한국사상사를 전공한 김기현위원은 전주의 저항정신은 상대가 있는 그런 저항이 아니라 내 삶속에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차원 높은 것으로 변혁 정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틀을 깨려는 자유로운 정신이 풍류와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것으로 풀었다.
김승종위원은 원로 국문학자 최승범 시조시인이 전주대 인문학강좌에서 전주의 저항정신을 버드나무처럼 유연한 저항이라고 하였다고 전하였다. 버드나무는 전주의 풍류정신과 관련해 주목되는 나무이다. 전주천변의 버드나무는 전주의 명물로 아직 건재하다. 버드나무 같은 전주의 저항정신, 직접 듣지 못해 그 깊은 뜻까지는 헤아리지 못하지만 와 닿는 바가 크다.
전주와 전라도가 차대를 받아 중앙진출이 안됨으로서 예술이 발전했다는 것은 현상만 본 해석이다. 차대 받아 할 일이 없어서 예술이 발전한 것이 아니다. 새롭고 아름다운 삶을 찾아가는 자유로움이 예향을 꽃피운 본질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의 경제력이다.
전북역사문화의 본질은 높은 자존감으로 보다 나은 삶의 가치를 추구한 것이다. 전북의 지역사와 정신사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전라도천년이 역사속에 비틀려진 부분을 바로 잡고 현재의 어려움에 흔들리는 자존감을 굳건히 하는 출발이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